09. 대학도서관 = 감성 도서관: 피드백 나무
[남쪽으로 향하는 그 버스 정류장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생기 가득한 젊은 남녀 세 쌍이 재잘거리며 샌드위치와 포도주 병이 가득 담긴 짐을 들고 버스에 올랐다. 플로리다의 포트 라우더데일 해변으로 향하는 버스였다.
승객이 모두 타자 버스가 곧 출발했다. 황금빛 백사장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향해, 차창 밖으로 추위에 움츠러든 회색의 뉴욕 거리를 뒤로 하고 질주해 갔다.
세 쌍의 남녀들은 낯선 여행길의 흥분으로 쉴 새 없이 웃고 떠들어 댔다. 그러다가 조금 시들해졌는지, 뉴저지를 지나갈 무렵부터는 조금씩 조용해지고 있었다.
그들의 앞자리. 허름한 옷차림의 사내 한 명이 묵묵히 앞쪽만 응시하고 앉아 있다. 무표정한 그 얼굴로는 나이가 짐작되지 않았다. 남자는 입술을 굳게 닫고 앉아, 조잘거리는 남녀들이 무안해질 만큼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밤이 깊어서 버스는 휴게소에 잠깐 멈추었다. 승객들은 앞 다투듯 버스에서 내려 허기진 배를 채웠다. 단 한 사람, 예의 남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젊은 남녀들은 남자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별의별 상상에 빠져들었다. 뭐하는 사람일까. 배를 타던 선장일까? 아니면 아내와 싸우고 집에서 도망쳐 나오는 사람? 고향으로 돌아가는 퇴역 군인?
부랴부랴 식사를 마친 승객들을 태우고 버스가 다시 길을 떠났다. 이때, 일행 중의 용감한 여자가 그 남자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실례합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는 발랄하게 말을 걸었다.
"우리는 플로리다로 가는 길이에요. 처음이죠. 듣자니까 그렇게 멋지다면서요?"
한참 만에 그가 가라앉은 목소리고 대답했다.
"……그렇지요."
남자의 얼굴에 야릇한 우수의 그림자 같은 것이 어렸다. 오래 전 한때의 기억이라도 떠올랐던 것일까.
"포도주 좀 드시겠어요?" 젊은 여자가 남자에게 권했다.
"고맙습니다." 비로소 그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자가 건네는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신 남자는 다시 완강한 침묵 속으로 잠겨 들었다. 별 수 없이 여자가 다시 일행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잠을 청하려는 듯 등을 뒤로 기대며 눈을 감았다.
아침이 되었다. 버스가 다시 휴게소에 멈춰 섰다. 이번에는 남자도 다른 승객들을 뒤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어젯밤 말을 붙였던 젊은 여자가 그를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오세요. 우리와 함께 식사해요!" 그는 몹시 수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식사 시간, 젊은 남녀들은 목적지인 플로리다 해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며 연신 재잘거렸다. 그러한 와중에, 남자는 우울한 표정으로 연신 담배를 피워 물곤 하였다. 큰 근심거리라도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젊은 일행 중의 그 여자가 다시 남자의 옆으로 가 앉았다. 남자는 그녀의 집요함에 두 손 들었다는 듯, 자기소개를 느릿느릿 꺼내놓았다.
"난 빙고라고 합니다. 지난 4년 동안 뉴욕에서 내내 있었지요. 형무소에서. 그리고 며칠 전에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군요. 결혼은 하셨나요?"
남자가 대꾸했다.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다니요?"
"형무소에 있는 동안,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었지요." 남자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오랫동안 가정을 돌볼 수 없는 형편이니, 그렇게 오래 나를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든지, 아이들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이 고생이 된다면 나를 잊으라고 했지요. 참 좋은 여자거든요. 편지 같은 건 안 해도 좋다고.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 재혼해도 좋다고……. 그 뒤로 아내는 편지를 하지 않았어요. 3년 반 동안이나……."
"그런데 지금 댁으로 돌아가시는 길이란 말이죠? 어떻게 될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지난주에 가석방 결정이 확실해졌을 때, 또 편지를 썼어요. 옛날에 우리는 부른스위크라는 곳에 살았는데, 마을 어귀에 커다란 참나무가 한 그루 있었지요. 나는 편지에 그 참나무 이야기를 썼습니다. 만일 나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그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붙들어 매어 두라고. 노란 손수건이 참나무에 걸려 있으면 나는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갈 것이고, 손수건이 없으면 재혼을 했거나 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것으로 알겠다고. 그래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겠다고."
"그러면 마을 어귀의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이 걸려 있지 않으면……."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어디로건 갈 생각입니다."
여자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뒤에서 이야기를 전해들은 일행들도 이 이야기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는 마치 자기들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두들 흥분에 들떠 제 나름대로 상상의 날개를 폈다.
빙고는 젊은 일행들에게 간직하고 있던 사진을 보여주었다. 구겨지고 낡아빠진 빙고의 사진 속에는 부인과 세 자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부인은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마음 좋고 정숙한 인상이었다. 사진 속의 어린애들은 아직 어렸다.
버스는 쉬지 않고 달렸다. 마침내 '부른스위크 20마일'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젊은이들은 모두 오른쪽 창문 옆자리로 다가갔다. 남자가 말한 커다란 참나무가 나타나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마침내 버스 안의 모든 승객들 사이에 이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리하여 부른스위크가 가까워올수록, 차 안에는 설레는 긴장감이 가득 차 올랐다.
개중에서 가장 침착한 것처럼 보이는 이는 남자였다. 그는 흥분한 표정을 보이거나 얼굴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거나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굳어 있는 그 얼굴에서, 남모를 긴장감을 엿볼 수가 있었다. 혹시 그는, 이제 곧 눈앞에 나타날 실망스러운 장면에 대비하여 마음속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을과의 거리가 20마일에서 15마일로, 다시 10마일로, 점점 더 가까워졌다. 버스 안의 긴장과 정적은 물을 끼얹은 듯 계속되었다. 엔진 소리만이 꿈결처럼 아스라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별안간 요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젊은 일행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치며 춤을 추듯 뛰었다. 덩달아 다른 승객들도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한 명, 그 남자뿐이었다. 그는 넋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차창 밖 멀리 보이는 참나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 참나무는 온통 노란 손수건의 물결로 뒤덮여 있었다. 20개, 30개, 아니 수백 개가 바람 속에 환영의 깃발로 마구 물결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박수를 치며 소리치는 동안, 늙은 전과자 빙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버스 앞문 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샘터사 노란 손수건(2007) 전문)
대학도서관에 피드백 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 갑자기 노란 손수건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 이용자들은 대학도서관 피드백 나무에, 잘하고 있다는 노란 손수건을 걸어줄 수 있을까?
대학도서관의 행정 및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이용자를 향하기 마련이다. 어떤 정책, 어떤 서비스를 도입하던지간에 담당자, 정책 결정자는 이용자를 고려한 결정임을 전면에 내세운다. 실제 도서관을 이용하는 이용자가 주인이고, 이용자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도서관의 역할인 것이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그러나 실제 프로세스를 들여다 보면 이용자를 고려하는 절차에 실제 이용자 의견은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담당자 혹은 정책 결정자의 자의적인 테두리 안에서 이렇게 해주면 다수의 이용자가 편해질 것이라는 가정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지, 실제 이용자 의견을 수렴하여 그 내용을 바탕으로 정책 방향을 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K대학도서관의 경우에 별도의 이용자 의견 수렴이나 이용자를 대표하는 기구(총학생회, 교수회, 노동조합 등등)와의 도서관 정책 논의 절차는 전무한 상황이다(항목이 정해진 이용자 만족도 조사나 특정 서비스에 대한 설문 조사 등은 물론 존재하고 있다.). 더 나아가 도서관의 정책과 방향을 결정하는 기구인 도서관운영위원회에는 정책 결정자와 단과대학별 대표(전임교원)만 참여하고 있으며, 다수 이용자들을 대표하는 총학생회, 교수회, 노동조합 등은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대학도서관 운영에 있어 정말 필요한 것은 실제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적확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이용자들의 목소리인데,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듣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개선해 나갈 시간과 의지가 아직은 부족하다. 다양한 목소리를 두려워한다. 무서워한다. 그래서 오히려 귀를 막고자 한다. 실무자 입장에서 보면 당연하다.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이후 그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제공하거나, 실제 결과물을 만들어 개선해 나가는 절차로 이어져야 하는데 처리하기 복잡해 지거나 예산, 인력, 행정 절차 등 제한적인 요소들로 인한 벽에 부딪혀 새로운 서비스로 나아가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듣기만 하고 끝나면 오히려 불만이 더 높아질 우려가 크기 때문에 무서워하고 두려워 하는 것이다. 안 듣는게 더 편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도서관 정책은 다수의 이용자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소수 의견에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된다는 합리화도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용자의 목소리를 듣는 방법 및 수준은 각 도서관의 여건에 맞게 다양할 것이다.
이 글에서 논의하고 있는 피드백 나무가 만들어 질 수 있다면, 그 나무 옆에는 노란색 카드와 초록색 카드, 빨간색 카드 등을 비치해 두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우리 도서관이 잘하고 있는 느낌은 노란색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느낌은 빨간색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원할 경우에는 초록색으로...
20개, 30개, 아니 수백 개가 바람 속에 환영의 깃발로 마구 물결치고 있었던 그 참나무의 노란 손수건처럼
도서관의 피드백 나무에도 노란색 메시지가 가득차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눈물나는
그런 감성을 꿈꾸어 본다.
피드백 나무는 특정 기간만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말 북트리와 연계하여 한 해 도서관의 키워드를 작성해 두는 것도 향후 큰 빅데이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피드백 나무 이외에도, 현재 Q&A 같은 온라인 질의도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지만, 잘하고 있는 점에 대한 피드백은 논의할 수 없으므로 칭찬합시다! 개선합시다! 같은 통합 온라인 커뮤니티로의 확장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행정적인 절차(도서관운영위원회나 주기적인 공청회, 간담회 등)안에 다양한 이용 주체를 포함하여 공개적으로 의견 수렴을 해 보는 것도 향후 대학도서관이 추진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물론 담당자 입장에서는 무지 살 떨리는 일일 것이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백종원은 음식으로 유명 인사가 되어 있다. 백종원의 음식이나 연예인으로서의 기질이라던가 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단 한가지, 프로그램에서의 백종원은 대화 주제인 음식에 대하여 뭐든 많이 알고있고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체험한 결과가 녹아 있고 그에 따른 코멘트를 날리는 능력이 드러난다(물론 이러한 코멘트들이 정말 맞는지 아닌지는 내가 알 수 없는 것이다. 난 요리 전문가가 아니니까.). 더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종원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조건, 능력, 분위기, 성격 등 다양한 의견에 대하여 많이 듣고, 그걸 반영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에 따른 코멘트를 날리는, 피드백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칭찬 보다도 객관적인 평가를 원하고, 그 평가를 반영하여 다음 서비스로 연결해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 대학도서관은, 필자는 이용자 관찰도 전무하고,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를 들어볼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너는 너, 나는 나 자세로 열심히 도와주는 척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도서관의 백종원이 되기 위해 이용자들을 더 지켜보고 더 많이 만나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그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제 피드백 나무를 통하여 더 큰 물음을 던져 보는 기대를 가져 본다.
왜 여러분들은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으시나요?
도서관을 어떻게 바꾸면 웃으며 찾아 오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