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 이야기

03. 무제: 그것_한페이지쓰기

by 해보기

뭘 그렇게 또 많이 사 온 거야. 어제 점심에 받은 것들, 저녁에 받은 것들도 쌓여 있는데 저 사람들은 잘 모르나 이미 많이 받아 놓은걸? 아침부터 또 사가지고 왔네. 오래 사용할 수 없는 물건들도 아닌데 하긴 그냥 오기는 뭐하겠지. 아주 친한 척하는 걸 보니 가족같은 뭐 그런 사이인가 보네. 그건 그렇고 보는 눈은 다 똑같은 건가 내 취향인 건가 하나같이 예뻐 보이기는 하네. 알록달록한데 그렇게 확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고,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왠지 하늘을 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천사, 토마토, 앵두, 우주선, 개, 로봇…. 새겨진 모양도 다양하고 암튼 보기만 해도 배부르네. 어제부터 받은 것들 쌓아 둔 저기 보면 말이야. 다른 건 다 많이 본 것들이라 사용법을 알겠는데 아, 저 물건 하나는 뭔지 모르겠어. 한 번도 본 적 없고 얘기 들은 것도 없는 물건이네. 저건 도대체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정말 궁금하다.


이 사람 지금 웃는 거야 우는 거야. 하긴 전부터 이 사람 변덕이 좀 심하기는 했지. 기분 좋았다가 갑자기 화도 내고. 웃다가 갑자기 울기도 많이 했지. 옆에서 몰래 들은 바로는, 이 사람 내가 없을 때는 더 심했다지. 집에 들어가기 싫어 밤새 술 많이 마셨다고 하던데 쯧 건강 좀 챙기지. 이 사람이 책을 읽을 때면 잠이 솔솔 왔어.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도 책을 읽어주겠다며 혀 꼬부라진 발음으로 꾸벅꾸벅 졸면서도 용케 책 몇 권을 읽고는 옆에서 잠이 들어버리고는 했지. 이 사람이 읽어주는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근데 사실 말이야 책에서 배운 것과 세상은 많이 다르더라구. 그래서 처음에는 책 내용이 이상했구나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세상이 뭔가 이상하게 꼬여있다 싶기도 해. 이상한 소리, 이상한 냄새, 이상한 느낌들…. 오늘 이 사람 내 사진을 들고는 나를 봤다가 사진을 봤다가 나를 봤다가 사진을 봤다가 웃는 거야 우는 거야. 그나저나 참 예쁘게도 생겼다. 어쩜 이렇게 눈이 크고 머리숱도 많은지…. 이 사람을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보일 수도 있겠고…. 이 방에는 거울이 없어 참 서운했는데 덕분에 잘 봤네.


아, 이 사람. 이 사람은 냄새만으로도 눈물이 나. 기억해. 그 수많은 밤 손 꼭 부여잡고 나와 함께 한 시간들. 항상 자신보다 나를 먼저 챙기던 이 사람.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내가 좋아하는 건지 먼저 물어보고,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나 괜찮은지 먼저 신경 쓰던 이 사람. 처음에는 내 옆에 있는 걸 너무 힘들어하길래 나를 싫어하나?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고 아무 일도 못 하고 누워만 있어서 괜히 내가 옆에서 힘들게 하나? 싶었는데 조금 지나고 나니 알겠더라구. 그것도 다 나를 위해 참고 있었다는 걸. 작은 소리 하나, 자그마한 빛 하나, 바람, 비, 하늘, 구름…. 그 모든 걸 나를 위해 바꾸고 있었다는 걸. 그래서 이 사람에게 배운 게 참 많아. 냄새, 진동, 소리, 촉감, 맛…. 그래 어제 이 사람이 처음 나를 바라보며 몸소 내어주던 그 맛. 잊지 않을게요. 고마워요.


이상하다. 점점 어두워지고 있네.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 아플 정도로 무언가 나를 찔러대는 것 같기도 하다가 또 금세 말짱해졌는데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역시 아직은 책에서 본 것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쉽지 않네. 그런데 쿵쾅쿵쾅, 뭔가 익숙한 간격의 숨소리가 거칠게 커지고 내 몸이 계속 심하게 떨리는 게 느껴지는 걸 보니 아마 이 사람 또 울고 있나 보다. 울지마요. 그런데 저 똑같이 생긴 물건들은 대체 왜 저렇게 많이 쌓여 있는 거야. 이 사람들이 쓸 물건은 아닌 것 같고, 난 아마 사용도 못 해볼 것 같은데….


[제목: 신생아. 2025.04.13. 김원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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