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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Dec 29. 2021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2020년 3월의 도서관·책 관련 책 |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책속의 말

책은 일종의 문화적 DNA, 한 사회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나타내는 부호다. 한 문화의 모든 경이와 실패, 승리와 악인, 모든 전설과 아이디어와 계시들이 책에 영원히 남는다. 이런 책을 파괴하는 행동은 그 문화와 역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과거와 미래의 연속성이 파열되었다고 말하는 강렬한 방법이다. 책을 뺏는 것은 사회가 공유한 기억을 뺏는 것이다. 꿈꿀 수 있는 능력을 빼앗는 것과 비슷하다. 책을 파괴하는 것은 죽음보다 더 나쁜 무언가를 선고하는 행위다. 그 문화가 아예 존재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p. 131)




1986년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에 일어난 대형화재를 치밀하게 추적하며 동시에 로스앤젤레스, 더 나아가 미국 공공도서관의 역사와 그 사이에 존재했던 사람들을 다룬 논픽션. 나는 1986년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 책은 독자를 바로 그 곳에 데려다준다. 투명할 정도로 밝았던 불꽃이 책을 집어삼키는 공포의 현장을 마치 내가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원제는 The Library Book이지만 한국어판 제목은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이다. 제목처럼 이 책은 도서관의 삶 그 자체를 다룬다. 도서관의 연간 예산은 어떤지, 어떻게 책이 대출되고 또 반납되는지, 도서관에서 어떤 서비스가 이루어지는지, 새 도서관을 건립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최근의 서비스는 어떻게 다른지. 말그대로 도서관의 삶이 담겨있다. 그 사이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도서관의 3요소는 공간, 자료, 사서라고들 많이 이야기한다. (여기에 이용자를 더해 도서관의 4요소라고도 한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서라는 관리자의 존재에 회의감을 가진 이들도 많은 듯 하나, 사서는 생각보다 올라운더여야만 하는 직업이다. 건물에 대한 관리, 이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경영 전략, 자료를 구입하고 그걸 원하는 이용자에게 연결시켜주는 일, 프로그램을 통한 평생교육 등 신경써야 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이 책에는 도서관에 대한 열정을 지닌 뛰어난 사서에 대한 언급이 많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여성 사서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도서관계는 확실한 ‘여초’ 업계다. 그럼에도 도서관 역사를 배울 때 남성 학자의 이름을 더 많이 알게 되며, 실무진에 여성이 더 많아도 관리직은 어느새 남성이 대부분인 것을 발견한다. 옛날부터 도서관 학교에는 여성이 더 많았다. 당시 여성에게 허락된 흔치 않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여성이 많다는 이유로 사서라는 직업이 저평가된 건 아닌가 혼자 생각해본 적도 있다.) 이 책은 미처 몰랐던 훌륭한 여성 사서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리직군은 남성이어야 한다는 편견에 의해 부당한 해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도서관을, 사서라는 위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그들의 헌신을 마음 깊이 존경하게 된다.

잘 쓰인 논픽션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생생한 묘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 조사와 인터뷰가 있었을지 저자의 노력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경이로운 것은 약 7시간가량 타오른 불에 장서 70만권이 훼손된 이 상황에서 도서관을 ‘살리고자’ 노력했던 당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사명감 아닐까. 책에서 나온 대로 ‘책을 뺏는 것은 사회가 공유한 기억을 뺏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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