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나 Dec 30. 2021

순간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첫사랑

2020년 3월의 그림책 | 첫사랑 (브라네 모제티치, 마야 카스텔리츠)

책속의 말

드레이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습니다. 그 애만큼 눈이 파랗고 예쁜 아이는 없었어요. 드레이크는 내 노래가 끝날 때마다 손바닥이 닳도록 크게 손뼉을 쳤어요. 세상에 우리 둘만 있는 것 같았지요. 선생님이 우릴 찾는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요. (p. 30-31)



내가 이 책을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난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움직씨 부스에 멈춰서 이것저것 책을 골랐다. (도서전만 가면 이번에는 책을 사지 말아야지, 다 읽고 사야지 결심해도 결국 새로운 책을 사오는 현상을 지칭하는 독일어도 있지 않을까.) <펀 홈>을 아마 이때 샀던 걸로 기억한다. 여러 권 고르고 결국 한가득 양손이 무거워졌던 기억. 그중에서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그때 못 산 책을 지금에서야 읽었다.

동화책의 주인공인 '나'는 낯선 도시로 이사와 도통 그곳에 적응하지 못한다. 또래 아이들과 밖에 나가 노는 것보다 집에서 산레모 가요제를 따라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아이인 '나'의 손을 잡고 내가 뒤처지면 끌어주고, 혹여라도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까 용감히 싸워주는 게 드레이크다. '나'는 그런 드레이크를 위해 '나'의 고독함을 달래 주고, '나'를 어떤 것보다 즐겁게 하는 산레모 놀이를 보여주기로 한다. 드레이크를 위해서라면 진지하게 무대를 선보이는 '나'와 관객이 없는 무대만 보여주던 '나'의 첫번째 관객으로서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감상한 드레이크. 그때 그의 파란 눈이 얼마나 크고 파란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드레이크는 '나'를 응시한다. 그러나 그런 '나'와 드레이크를 발견한 선생은 둘을 떨어트려 놓기에 급급하다. '나'와 드레이크가 둘다 남자라는 이유 때문이다. 어른의 편협함으로 여섯 살 아이들이 '무언가 잘못했다'라고 느끼게 하는 폭력적인 행동의 연속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림으로 포근하게 첫사랑을 표현했지만, 동시에 씁쓸하게 남는 감정은 앙금처럼 가라앉는다. 뒤늦게서야 그게 첫사랑이라는 걸 알게 되는 회상보다, 그 순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첫사랑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고,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 나날. 아련하게 떠올릴 첫사랑의 기억은 없어도 이런 건 바랄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