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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Jan 01. 2022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020년 4월의 여성 작가의 책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않았다

책속의 말

무엇이 나를 돕는 걸까? 그건 바로 우리가 함께 사는 데 익숙하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행복도 있고 눈물도 있다. 우리는 고통스러워할 줄도 고통에 대해 이야기할 줄도 안다. 고통은 남루하고 힘겨운 우리네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가. 아픔, 그건 우리에게 하나의 예술이다. 우리 여자들이 바로 이 아픔과 고통의 길을 향해 용감하고 당당하게 나아갔음을 나는 밝혀야만 한다...... (p.20)
우리는 너무 이른 나이에 전쟁터로 갔어. 아직 어린애나 다름없었는데. 얼마나 어렸으면 전쟁중에 키가 다 자랐을까.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내 키를 재보았는데...... 그동안 10센티미터나 키가 컸더라니까...... (p.85)
‘심장 하나는 증오를 위해 있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위해 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사람은 심장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나는 늘 어떻게 하면 내 심장을 구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 (p.554)




이 책은 꽤 오랫동안 우리집 책장에 꽂혀 있었다. 역시나 이 책을 산 지는 꽤 되었지만, 나는 이 책을 읽을 용기가 쉽사리 나지 않았다. 이전에 "청춘의 증언"이라는 영화를 보기 전에도 비슷했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적나라한 현실에 고통스러워 할 것이 뻔했지만 유독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4월, 그것도 16일이었다. 더는 외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책이든 작가 홀로 만드는 책은 없겠지만, 이 책이야말로 작가 혼자 만든 책이 아니다. 200여 명의 전쟁을 겪은 여성의 목소리를 작가가 담아낸 이 책은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멈출 수 없이 읽게 되는 흡인력이 있다. 200여 명의 여성의 증언을 논픽션이지만 소설처럼 생생하게 담아낸 이 장르를 작가는 '소설-코러스'라고 부른다고 한다.

전쟁이 끔찍하다는 것을 우리는 대부분 알고 있다. 얼마나 끔찍한지 전쟁의 얼굴을 낱낱이 들여다 볼 용기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기에 외면하고 마는 법이지만 말이다. 한 줄씩 읽어내려가는데 그 참혹함에 눈물이 난다.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했던 이들이 자원해야 했던 이유, 난생 처음으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겪었을 고통, 성별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신뢰받지 못하고, 편견과 싸워야 했던 나날, 전쟁이 끝난 후 잊혀진 그들의 목소리와, '여성답지않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야 했던 현실, 전쟁의 흉터처럼 남아버린, 온통 고장난 몸. 그 모든 상흔이 아파서 울고, 살면서 겪기에 너무 커다란 고통을 이제껏 말 못하고 담아놓아야 하는 현실에 또 울었던 것 같다.

전쟁이라는 단어 자체에 성별은 없지만 '전쟁'하면 자연스레 남성을 떠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 영화를 보면 여성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교과서에서는 전쟁에서 여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인류의 절반이 여성인데 어째서 그 전쟁터에 여성이 없으리라고 생각했을까. 역사에서 수많은 여성을 지웠듯 전쟁에서도 똑같았다. 제목처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수많은 여성의 목소리가 지워졌기 때문이었다. 전쟁을 증언한 여성은 출신이 다양했다. 뛰어난 저격수, 간호병, 위생병, 통신병, 기록수, 제빵병, 지뢰 해체반, 운전병... 그만큼 어느 곳에도 여성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열 여섯이 채 되지도 않은 소녀가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끓어 올라 최전선에 보내달라고, 여러 번 고사를 당하면서도 재차 당 위원회에 찾아가거나, 극심한 스트레스에 열 아홉도 안 되어 머리가 전부 하얗게 쇠어 버리고, 맞는 치수가 없어 커다란 군화를 절걱이는 소녀 병사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던 전쟁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앞으로 우리가 배워야 할 전쟁에 대한 역사는 바로 이 책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어느 한 성별만 존재하는 역사가 있을 리 없다.


p.s. 많은 분들이 언급하셨겠지만, 나 또한 이 책의 추천사 중 하나가 굉장히 거슬렸다. 500페이지가 넘는 글 내내 왜 이제껏 전쟁이 여성의 얼굴을 하지 못했는가를 증언하는데도 굳이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까. 이 책을 읽지 않고 추천사를 쓴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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