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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Feb 12. 2022

아이의 시선으로 본 어른의 상처, 여름의 잠수

2020년 9월의 동화책 | 여름의 잠수 (사라 스트리츠베리 외)

책속의 말

"아빠는 낫는 게 어떤 건지 잊어버린 것 같아."
아빠는 나무 같았다. 겨울에는 죽은 척했지만 여름이 되면 살아났다.
어떤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 
어떻게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슬프다.
가끔은 너무 슬퍼서 슬픔이 지나갈 때까지 병원에 있어야 한다.
위험한 일은 아니다.




표지에는 여자아이와 성인 여성이 똑같은 옷을 입고 누워 있다. 수채화 느낌의 표지는 채도가 높고, 밝은 느낌이다. 하지만 색이 차가워서 마냥 밝지는 않은, 서늘한 느낌을 준다. 옆에 쓰인 제목은 '여름의 잠수.' 대체 무슨 의미일지 궁금했다. 전적으로 표지에 홀려 책을 집어 들었다. 다음 장을 넘겨 본 저자의 소개에 정신병원에 입원한 친척에게 면회를 간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림책이라는 설명에 표지가 예쁜 것처럼 마냥 예쁜 이야기는 아니겠구나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장부터 '아빠였던 사람이 사라졌다.'고 시작한다. 그런데도 그림은 주황색, 노란색, 빨간색 등 알록달록하기 그지없다. 아빠의 빈 자리를 어색한 얼굴로 바라보는 아이와 익숙하게 신문을 펼쳐 드는 엄마의 모습은 그 알록달록한 그림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아빠가 사라졌다고 했지만 아빠는 분명 실존하는 사람, 추억 속에는 존재하는데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은 위화감을 느끼기에 소녀의 표정은 어색했던 것 아닐까?

아이가 아빠의 행방(병원)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림은 유독 차가운 색을 띠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곳을 보고 앉아 있으며 겨울인 것처럼 보인다. 아빠는 벽도 창도 문도 있는 건물에 있는데 그 문은 모두 잠겨 있다. 마치 이전에 아빠가 존재했었지만 지금은 지워진 듯 엄마가 행동하듯, 별다를 것 없는 건물에서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마침내 아픈 아빠를 만난 아이는 가볍게 절망하지 않았을까. 분명 내가 세상에 있는데도 아빠는 살고 싶어 하지 않고 그것에 대해 아이에게 빈말도 하지 않는다. 짙은 외로움을 느꼈을 아이가 분홍 벽지의 방에서 만난 사비나는 표지에 그려진 분명 그 여성이다.

아빠가 면회를 원치 않아도 혼자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가는 아이, 소이는 홀로 아빠를 기다리는 동안 사비나를 만난다. 그리고 예의 그 방에서 다시 사비나를 만난다. 소이와 사비나는 나무 아래에서 수영 연습을 한다. 자유롭게 잔디밭을 마치 수영장처럼 헤엄치는 사비나와 소이는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사비나가 아빠처럼 아픈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는 섣불리 판단하고 싶지 않다. 분명한 것은 소이가 그 여름 사비나로 인해 덜 외로웠다는 점이다.

마침내 아빠는 퇴원을 한다. 커다란 건물을 두고 사비나와 소이의 세계. 그러나 사비나가 항상 하고 다니던 파란색 목걸이가 이제는 소이에게 있는 것을 보면 그 목걸이가 둘을 여전히 이어주는 듯하다.

여름의 잠수란 사비나와 함께 했던 그 여름 동안의 수영 연습을 뜻하기도 하고, 여름 동안 세상과 분리되어 가라앉아 있던 소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밝은 표지에 비해 마냥 밝은 내용이 아니었던 이 동화를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거대한 슬픔을 어떻게 곱씹을까?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시기에 있어본 경험이 있던 나는 소이보다는 아빠에 가깝기에 이 책이 마음 깊이 이해갔지만,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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