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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Feb 12. 2022

자조로 자기연민을 덮으며, 대도시의 사랑법

2020년 9월의 읽고 싶은 책 |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차별과 낙인과 같은 조금 무거운 주제의 책을 읽다 보니 환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자체는 매우 흥미로웠고 그렇게 딱딱하지 않은 훌륭한 교양서였지만 일정량 이상의 기력을 사용하면 쉽게 지쳐버리는 저질 체력과 기력으로 인해 뇌를 조금 풀고(?) 쉬어가는 턴을 얻고 싶었다. 동시에 갑자기 사랑 이야기가 땡겼다. 아,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로맨틱 끌림이 포함된, 한마디로 말하면 남의 집 불구경 하고 싶었단 얘기다. 나는 그런 끌림을 거의 느끼지 않는 주제에 왜 이렇게 남의 사랑 이야기는 재밌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거의 겪지 않는 감정이라 관찰하듯 보게 되는 건 아닐지.

사족이 길었지만 이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제목인 "대도시의 사랑법"이 떠올랐다. 이거야말로 로맨스겠지. 책 소개를 읽는데 아무튼 연애 이야기인가보다 했다. 그렇게 잡고 읽기 시작한 책은 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이 책은 연작소설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각각의 단편이 하나로서의 완결성을 띠지만 느슨하게 이어져 있다. 조금씩 읽어도 부담이 되지 않고, 다 읽고 나면 자연스레 연결이 되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유쾌함인데, 주인공은 언제나 약간의 자조적인 농담을 던지며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는 유머를 탄생시킨다.

주인공은 게이지만 아무래도 읽는 나는 그의 연애사보다 (분명 연애 이야기를 보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친한 여성 친구, 그와 그의 어머니의 관계에 더 매혹되었다. 이쪽이 더 공감할 거리가 많아서였다.

처음 수록된 '재희'에서 주인공은 클리셰적인 '좋은 게이 친구'이다. 하지만 그보다 재희에게 집중을 하게 되는 건 얌전하지 않은 여성에게 얼마나 많은 겹겹의 혐오가 쏟아지는지, 그리고 이 사회가 얼마나 여성이 부자유스러운지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게이인 주인공과 여자인 친구 재희 간의 연대는 가끔 이상적인 연대의 모습을 꿈꾸게도 한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 바로 독실한 기독교인인 어머니와 게이 아들 간의 갈등을 다룬, 수록된 단편 중 제일 긴 작품인데 주인공의 복잡한 심경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게 된 것은 많은 상황이 나와 비슷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단편을 읽고 나서 무언가 말을 꺼내다가 자꾸 자기 연민으로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독자가 그러라고 쓴 글이 아닐 텐데... 아무래도 너무 나와 거리가 가까운 모양이다. 그래서 일단 애매모호하게 이쯤에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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