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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Mar 13. 2022

'초대받지 못한 자'는 누구인가?

2022년 2월 여성작가의 책 | 초대받지 못한 자 (도러시 매카들)

책속의 말

“문제는 새로운 것을 의심쩍어하는 ‘얼간이 대중’이 아니라 모호하다는 이유만으로 범상하기 짝이 없는 것들에 ‘할렐루야’를 외쳐대는 말 잘하고 무식한 속물들이지.”     
“드문 주제를 탐구하고 싶어. 그리고 여자들의 권력욕이 기괴하게 왜곡됐다고 생각하고. 너무 억압돼 있어. 현대적이고 복잡한 사람은 자신의 동기도 잘 모르지. 겹겹의 동기가 있으니까. 게다가 심리학자들이 열어놓은 무시무시한 정글을 봐!”



※ 이 글에는 "초대받지 못한 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 남매는 영국의 비싼 집값 때문에 도시를 벗어나 외곽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아주 근사한 집을 발견한 남매는 수상쩍도록 저렴한 집값과 집주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집의 매력에 푹 빠진다. 그들이 입주한 후, 집에서는 수상한 소리가 들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 집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이야기하는데…

흔히 볼 수 있는 공포 영화 소개 글 같은 요약이지만, 실제로 이 소설의 초반을 요약하면 위와 같다. (실제로 이 소설은 할리우드에서 영화화 되었다.) 공포 영화 좀 봤다, 하는 사람은 위 소개 글을 보고 뻔한 공포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공포 영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유령이 나타나는 저택’은 공포 장르의 클리셰 아니던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유령은 하나가 아니다. 첫 번째는 남매가 산 집의 원래 주인인 중령의 손녀 ‘스텔라’의 어머니 메리의 유령, 두 번째는 메리의 남편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추정되는 카르멜의 유령이 등장한다. 이 둘은 착한 유령과 나쁜 유령으로 소설 내내 대립 구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남매가 이 유령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강령회까지 열면서 알아낸 진실은 우리가 예측했던 진실과 사뭇 다르다. 독자는 점점 그들의 비밀을 추리하며 진정한 진실에 가까워진다. 마침내 그 진실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다. 이전에 트위터에서 서양과 한국에서 공포 장르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한국은 특히 ‘처녀귀신’의 나라라는 트윗을 본 적이 있다. 머리 풀어헤치고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해 성불하지 못한 채 나타난 여성은 가부장 사회가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트윗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장화홍련전’ 같은.) 이 소설에서도 착한 유령 대 나쁜 유령이라는 구도를 전복시키며 공포의 근원을 탐구해 나간다.

이 소설에는 아일랜드 독립운동가인 작가의 사상이 자연스레 녹아있는데, 이는 등장인물이 겪었던 ‘억압’을 통해 알 수 있다. 스텔라는 성인이 되었는데도 보호자인 중령이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한다. 남매도 아일랜드 출신인데 영국까지 온 것을 보면 나름의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결정적으로 ‘나쁜 유령’인 줄 알았던 카르멜도 외국인 여성 이민자로서 억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는 어떤 형태의 억압도 반대하며,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주인공인 로드릭은 작가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작가와 비슷한 면이 많다. 아일랜드 역사서를 집필했다거나, 몇 편의 극을 쓰기도 했던 극작가였다는 점 등 작가를 대변하는 캐릭터로 보인다. 그는 스텔라의 해방을 위해서 노력할 뿐만 아니라 동료 여성 예술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등 그 시대 남성 캐릭터치고 불쾌한 구석이 적다. 남성 캐릭터지만 여성이 조형했기 때문일까. 한 논문에서는 로더릭이라는 남성 캐릭터를 화자로 내세운 까닭을 로더릭이 매카들을 비롯한 여성 동지에게 아일랜드 남성이 보였어야 하는 태도를 수행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당시 아일랜드 여성은 영국, 가톨릭교회, 심지어 아일랜드 남성에게도 억압당하는 상황이었으며, 남자들은 아일랜드 전쟁 때 함께 용감히 싸웠던 여성이라 해도 전쟁이 끝나자 그들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길 원했기 때문이다. 로더릭의 동생인 패멀라는 그러한 환경에서도 아일랜드 여성으로서 결혼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이며, 이 소설에서 유령에 대한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성과 논리로만 접근하는 로더릭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패멀라는 특유의 직관으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2022년에 읽어도 생동감 넘치고 현대적인 캐릭터는 이 소설을 읽을 때 재미를 더해준다.

당시 아일랜드 여성은 아일랜드 남성에게 '초대받지 못한 자'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매카들 본인은 이 소설을 가벼운 소설(light novel)이라고 했지만, 이 소설에는 격렬한 저항의 흔적이 가득하다. 공포의 근원에 관한 탐구와 약자 억압에 대한 강렬한 항거를 클리셰의 전복으로 보여주며 어디에 중점을 두는가에 따라 때로는 가볍게도, 때로는 무겁게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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