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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Dec 27. 2021

길은 이어진다, 루비프루트 정글

2020년 2월의 여성 작가의 책|루비프루트 정글 (리타 메이 브라운)

 여성 작가

책속의 말

“왜 모두들 항상 사람을 틀에 욱여넣고 못 나오게 하려고 하지? 나도 나를 모르는데. (중략) 난 나야. 그게 내 전부도 내가 되고 싶은 것도 그게 전부야. 내가 꼭 뭐가 되어야 돼?” (p. 155)
“젠장!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 머리에 든 지식은 남아 있어. 그건 아무도 나한테서 못 뺏어 가. 그리고 언젠가는, 너한테는 그런 날이 안 올 것 같아 보여도, 그 지식으로 내 영화를 만들 거야.” (p.245)
그녀를 미워할 때조차 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아마 세상 모든 아이들은 엄마를 사랑하나 보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아는 하나뿐인 엄마다. 아니 어쩌면 그녀의 편견과 두려움의 껍데기 속에는 사랑으로 가득 찬 한 인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p.339)




지금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현재는 비교적 중립적으로 쓰이는 ‘퀴어’라는 단어가 멸칭일 시절, 자신보다 타인이 나의 존재를 규정하려고 드는 것에 반기를 들고 모험하는 레즈비언 여성의 이야기다. 이 책이 출판된 건 1973년이고 소설 속 배경은 1960년대 미국의 보수적인 마을이다. 2020년을 살고 있는 사람의 시선에서는 어떻게 보면 ‘지나간’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안타깝고 화나는 것은 주인공인 몰리가 맞닥뜨리는 많은 상황이 현재 많은 여성, 퀴어가 겪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루비프루트 정글에 나오는 여성은 몰리와 관계를 맺으면서도 퀴어 혐오를 하거나, 여성의 정형화된 역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몰리로 하여금 정체성이 흔들리는 불안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듯 하다. 남성은 말할 것도 없다. 몰리는 계속해서 몰리를 구속하려는 시선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자신에게 어떤 말이 쏟아지든, 마치 절규하듯 소리친다. 아무도 자신의 머리에 든 지식은 빼앗아갈 수 없고, 자신의 영화를 만들 거라고. 몰리와 다른 여성이 갈등을 겪는 모습은 너무나도 친숙하다. 특히 몰리와 엄마인 캐리의 갈등이 그렇다. 많은 딸이 엄마에게 거부당하면서도 사랑하는 건 모순되는 감정이지만 같은 여성으로서의 공감과 연민,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생기는 애증 등 그 모든 감정이 복잡하게 섞여있다는 걸 알기에 이해가 된다.

이 소설의 결말을 읽으면 몰리의 모험이 결코 여기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된다. 몰리만큼 뛰어난 여성이라고 해도 현실은 아직까지 소수자를 배척하니까, 퀴어 여성 페미니스트에게 삶은 지속적인 모험이겠지. 그럼에도 몰리는 그 모험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오십 살이 된 몰리의 모습은 아마 많은 여성 영화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준, 가장 앞서 그 길을 걸은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그 영화를 보고 용기를 얻고, 또 다시 한 발자국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뒤를 걷게 될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그 길은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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