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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Aug 16. 2022

개인의 삶은 덩어리가 아니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2022년 5월 여성 작가의 책 |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책 속의 말

하지만 언제나, 지나간 사람, 지나간 곳, 지나간 시간은 눈앞에 존재했다. 항상 미래로 뒷걸음질 치면서 과거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다.
남의 비밀을 들은 자는 자신의 비밀 역시 말해야만 한다. 비밀은 반드시 숨기고 싶은 일을 뜻하지는 않는다. 숨길 만한 일이 아니더라도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비밀이 된다.
나는 그의 인생과 죽음을 길 위에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의 존재를 죽음과 망각으로부터 건져 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무게를 양팔에 느끼면서 이야기를 써 나갈 생각이다. (작가의 말)




이 책을 맨 처음 알게 되었을 때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수상작이구나,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이면 일본 작가인가? 그런데 작가 이름이 “유미리”였다. 아무리 봐도 한국 이름 같은데? 가만 보니 재일 교포 2세라 한국계 작가였다. 심지어 저자는 기념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일본인이 아니기에 이를 일본 문학의 쾌거로 삼는 건 부당하다’라고 했다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이해했다. 이방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책은 처음부터 구조가 독특하다. 어떻게 보면 충격적인 시작이다. 주인공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체 왜 그가 죽음을 맞게 되었는지, 주인공인 가즈의 삶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면 너무나도 기구한 개인의 삶이 펼쳐진다. 가즈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아내를 잃고, 노숙하게 되며, (훗날의 이야기지만) 딸도 잃게 된다. 그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하고, 결국 노숙하게 된 게 그의 문제일까. 올림픽을 대비해 경기장을 건설하는 등 국가를 위해 일을 했지만, 그 노동의 대가로는 벗어날 수 없는 가난과 거리로 내몰리게 된 상황만이 존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즈는 황실과 운명의 실타래가 엮인 듯하다. 황태자와 아들의 생년월일이 같고, 천황과 자신은 생년이 같은데 운명은 정반대다. 그것을 가르는 건 누구였을까. 왜 누군가는 공원에서 노숙하다가 황실 가족이 공원에 방문하는 날엔 쫓겨나야 하고, 누군가는 그 어떤 방해물과 거슬리는 것 없이 아름다운 공원에 편안하게 방문하고, 모두에게서 환영을 받는 것일까?

노숙자는 황실 사람이 공원에 방문하면 ‘치워진다.’ 미관을 위해서 치워지는 사람들. 배제당하고 소외되는 삶을 재일한국인인 작가는 세밀하게 그려낸다. 아마 본인이 그런 배제와 차별을 겪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작가는 지금도 말한다. “나는 그의 인생과 죽음을 길 위에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 나는 그의 존재를 죽음과 망각으로부터 건져 올릴 것이다. / 그리고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무게를 양팔에 느끼면서 이야기를 써나갈 생각이다. ”라고. 저자가 소외당한 개인의 삶을 이렇게 세밀하게 묘사했을 때 우리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볼 수 있게 된다. 개개인에게는 전부 사정이 있는데, 누군가 ‘노숙인’이라는 분류에 들어가는 순간 그것은 개인의 삶보다는 덩어리가 되고 만다. 맥락은 지워지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시민보다는 혐오하기 편안한 관념적 존재가 되는 듯하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그러지 못하게끔,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끔 삶을 그려낸다.

이렇게 그려냈기에 일본이 이 작품을 어지간히 싫어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라고 다를 바는 없겠다. 만약 동남아시아 작가가 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자 실태를 적나라하게 그려 상을 받는다면 우리나라의 반응도 일본과 얼마나 다르겠는가. 심지어 이 책이 전미도서상을 수상했으니 일본으로서는 숨기고 싶은 부분이 드러난 것이다.

동일본대지진의 상처까지 다룬 작가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이주해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쪽이라 다행”이라고 말하는 저자도 이렇게 말하기까지 쉽지 않았으리라. 차분한 어조로 상처를 낱낱이 드러내는 저자는 다음 작품에서 또 어떤 소외되고 배제된 삶을 우리 앞에서 보여줄까. 나는 도저히 외면하지 못하게 하는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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