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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Apr 15. 2023

사랑한다는 말 이상의 고백,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2023년 3월의 책읽을깡현 |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스미노 요루)

책속의 말

“너와 교코 말고는 모두가 나를 따분한 클래스메이트나 아니면 그 이하로 생각해.”
“그거, 본인들에게 물어본 거야?”
그녀는 내 인간성의 핵심을 꿰뚫어보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어본 건 아니지. 하지만 틀림없이 그래.”
“그런 건 본인들에게 물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거야. 그냥 너만의 상상이잖아? 꼭 맞는다고는 할 수 없어.”


내 마음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있기 때문이고, 내 몸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잡아주기 때문이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는 지금 살아있어. 아직 이곳에 살아있어. 그래서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어. 나 스스로 선택해서 나도 지금 이곳에 살아있는 것처럼.



책을 좋아하거나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찾아오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판타지 소설과 일본소설 시기인데, 둘은 간혹 함께 찾아오기도 한다. 주로 중, 고등학생, 빠르면 초등학교 고학년 때 세상에 존재하는 판타지 소설과 일본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게 된다. 그때 읽었던 책을 전부 합해도 지금 읽는 책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소설이 재미있든 그렇지 않든 독파할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가 있던 시기. (지금은 이 책이 재미있을지 없을지 간을 봐 가며 겨우 우주의 기운을 모아 책을 손에 잡아도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이 모든 건 과학적 근거나 통계적인 근거는 하나도 없고, 단지 나와 내 주변 사람을 표본으로 한 가설에 불과하다. 갑자기 왜 이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냐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일본 소설을 읽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중고등학생 때 일본소설에 한창 빠져있을 때라면 당장에라도 손에 들고 앉은 자리에서 읽어 내려갔을 만한 소설이다.

세상과 단절하듯 주변 사람과 유대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가던 남학생인 '나'와 그런 '나'와는 정반대로 두루두루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여학생인 '사쿠라'가 주인공으로, '나'가 시한부인 사쿠라의 일기장인 공병 문고를 우연히 보게 되며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같은 반이기는 해도 교류가 없던 둘의 관계는 그때 이후로 사뭇 달라진다. 공병 문고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병과 함께 살아가며 사쿠라가 쓴 일기다. 그로 인해 '나'는 사쿠라의 수많은 친구보다 사쿠라의 투병 사실을 제일 처음으로, 그것도 유일하게 알게 된다. 사쿠라의 변덕일까? '나'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사쿠라에게 휘말린다.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영향을 주지도 받지도 않던 오롯한 '나 혼자'에서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나'로 변화하던 와중, 사쿠라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긴다.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가면 분명 어떤 부분에서는 편안하다. 나와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가고, 그런 부분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그냥 내버려 두기도 하면서 방법을 익히는 것은 항상 유쾌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갈등을 구태여 겪지 않아도 되니 혼자가 낫다고, 주인공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란 게 참 복잡한 존재다. 내게 쉽고 편안한 길이 나를 위한 길만은 아니다. 결국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고, 세상은 나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소중한 사람이 생긴다는 건 관계를 맺을 때 잡음 정도는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 또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사쿠라와 함께 지내며 이런 사실을 깨닫고 알을 깨부수고 나오는 새처럼 변화한다.

다만 나는 이 소설의 완전한 팬이 되기에는 어려울 거 같다. 영화로도 제작되고 수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소설이기는 하지만, 도저히 남자 주인공의 말투에 익숙해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가볍게 읽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나름의 메시지도 의미가 있지만 그게 내게는 큰 장벽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장벽을 굳이 극복해야 한다는 의욕이 영 생기지 않는다는 게 더 큰 장벽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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