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달리기

by libre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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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달리는 걸 좋아하는 러너다.

적당한 어둠 속에서는 들키고 싶지 않은 표정을 숨기면서

편안하게 달릴 수 있다.

하루가 끝난 저녁만의 그 차분한 분위기를 사랑한다.


저녁 러닝 중 신기한 경험을 했다.

사람들이 거의 없고 양쪽에 나무가 쭉 서 있는 트랙을 달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고 비트 빠른 음악을 들으며 발을 구르고 있었고

오버페이스해서 숨이 가빠지지 않도록 호흡에 더 집중하는 중이었다.

조금씩 땀이 흐르고 약간 지루함이 느껴지는 구간을 지나고 있을 때쯤

갑자기 무언가 달라졌다. 아주 명확하게.


앞 쪽 시야가 확 좁아지면서 길 위의 내가 진공상태 안에 들어간 듯 조용해졌다.

분명 이어폰 속에서 음악이 나오고 있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두 발은 계속 움직이고 몸은 붕 떠져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것 같았다.

길과 나만 존재하는 신비로움과 고요함.

아무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데 길에 나 혼자 덩그러니 있는

고독함이 밀려왔다.

무서운 게 아니라 포근하며 ‘편안하다’라는 말을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떤 억지스러운 힘도 없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이동하는 것처럼 쭉 달리고 있었다.

'어? 이게 뭐지?'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묘하게 미소 지어지며 발이 멈춰지지 않았다.

최대한 길게 이 묘한 진공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몽롱한 느낌과 웅웅 거림이 생생해 양팔에 소름이 돋는다.

명상이 순간에만 오롯이 존재하는 걸 의미한다면 난 분명히 명상 중이었다.

달리기 명상. 달리기도 명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직접 겪은 날이다.

누군가에게 이 엄청난 세포들의 움직임을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싶은데

내 언어 주머니가 작아서 이 정도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나만의 호흡과 조용함 속에서 뇌가 청소되는 경험을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있었을까?

이전에는 느껴본 적 없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각들을 열어가는 중이다.

오감이 아니 다른 감각이 더 생긴듯한 이 든든함이 나를 더 뿌리 깊게 하고

내일을 더 씩씩하게 살게 해 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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