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 뮤지컬의 예술성과 오락성 (4)
지금 대학로의 수많은 공연장들을 뮤지컬이 채우고 있다 하더라도 뮤지컬의 황금기라고 할 수는 없다. 에드윈 윌슨(Edwin Wilson)과 알빈 골드파브(Alvin Goldfarb)가 함께 쓴 『세계 연극사(Living Theatre:A History)』(김동욱 옮김, 한신문화사, 2000)에서 저자들은 그 책의 서론에서 연극사를 탐구하면서 기억해두어야 할 점들을 이야기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절정기 사이에는 무대디자인, 극작, 또는 연기 면에서 새로운 발전을 거의 이루지 못한 침체기가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 제작과 공연은 활발하여 흥행 면에서는 극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호황을 누린 적도 있었다.”라고 한다. 공연이 많이 올라가고 있다는 현상 하나만으로 발전되고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에 이정표를 세우는 작품이 하나 나오면 그것을 트렌드로 인식하고 작품을 내놓는 이들의 아류작들이 수없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런 수준 이하의 아류작들이 공연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동시대의 모습이지만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한국의 뮤지컬 관객은 글을 읽지 못하는 이민 노동자들이나 문학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맹자들이 아니다. 창작인들과 제작자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본격적인 뮤지컬의 모습을 가진 100년 남짓한 역사 속에서 이름을 남긴 몇 작품의 제목을 초연된 해의 순서대로 열거해본다. 쇼 보트(Show Boat, 1927),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 1935), 오클라호마!(Oklahoma!, 1943), 애니 겟 유어 건(Annie Get Your Gun, 1946), 키스 미 케이트(Kiss Me, Kate, 1948), 아가씨와 건달들(Guys ad Dolls, 1950), 왕과 나(King and I, 1951),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1956),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1957),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1959),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 1964), 맨 오브 라만차(Man of La Mancha, 1965), 캬바레(Cabaret, 1966), 헤어(Hair, 1968),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 1970), 코러스 라인(A Chorus Line, 1975), 시카고(Chicago, 1975), 에비타 (Evita, 1978), 스위니 토드(Sweeney Todd, 1979), 캐츠(Cats, 1981),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1985),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1986), 미스 사이공(Miss Saigon, 1989), 렌트(Rent, 1996), 브링 인 다 노이즈 브링 인 다 펑크(Bring in 'Da Noise, Bring In 'Da Funk, 1996), 라이온 킹 (The Lion King, 1997) 등등. 다른 명작들을 다 열거할 수도 없다. 그 예술성에 경의를 표하게 되는 이 작품들이 재미가 없다고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했던가? 이 작품들의 대부분이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공연되거나 해외팀이 와서 공연했다. 이 흔적들을 살펴보면서 느끼는 점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걸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뮤지컬계 전체에 기여를 하겠다고 하면서 작업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아가 그저 즐거운 쇼를 위해 작업을 했다고 하더라도 예술성에 대해 고민했고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 뮤지컬 역사에 남은 창작인들은 언제나 예술가로서의 장인 정신을 통해 예술성을 고집했다. 위에서 언급한 책 『미국 문화의 몰락』에서 저자 모리스 버만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음의 말도 소개한다. “장인 정신은 인생의 모든 측면에 적용되어야 하고 장인 정신의 핵심적인 가치는 노동 그 자체에 있기 때문에 이는 미국 사회의 기업 주도 소비주의 풍토와 그 목적상 정반대이다.”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나라 미국에서 그 자본주의와 닮은 연극인 뮤지컬을 창작했던 이들은 자본주의에 영합했다기보다는 도리어 빠르게 이윤을 만들어내는 것이 미덕인 자본주의에서 그리 달갑지 않을 외로움과 수고로움을 거절하지 않았다.
이 장의 결론을 내리자면, 뮤지컬을 창작하고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오락성보다는 예술성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이미 오락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것. 또 뮤지컬을 예술로 바라보고 그에 걸맞은 장인 정신으로 완성도를 높이라는 것. (그렇다고 최종 목표인 관객과의 만남을 무시하는 예술가의 독선을 지키라는 말이 아니다. 대가들의 꿈과 현실 사이의 균형감각을 배워야 한다.) 또한 상업주의의 트렌드를 따르지 말고 세상에 할 말을 하라는 것. 그렇다면 시대의 위기와 관계없이 명작들이 우리를 반겨줄 것이다.
이번 장에서 인용한 책들을 다시 살펴보니 마치 내가 한쪽으로 치우친 진보적이거나 급진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오해받을 것 같다. 그러나 앞장에서 인용한 토저 목사의 말을 흉내 내어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진보이니 보수이니 하는 논쟁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무의미하다.” 이미 돌아가신, 내가 존경하는 이오덕 선생께서 글은 쉽게 써야 한다고 했는데, 자꾸만 내가 읽어도 어렵게 쓰고 있는 것 같아서 죄송하다. 글을 멈추려니 서 있는 곳이 이오덕 선생의 무덤 앞 같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술 한잔 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