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마비 환자의 임신계획
엄마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과 맞서 싸우며
나이가 나이다 보니, 결혼한 친구들에게서 임신과 출산 소식이 들려오는 요즘이다. 얼마 전에는 20년 지기 단짝 친구가 출산을 해서 예쁜 용이 그려진 아가옷을 선물로 보냈다. 카톡 프로필에 만삭 사진과 신생아 사진을 올리며 행복해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축하를 보냈다. 그들의 행복과 환희가 감동적임은 분명하지만, 그 모습을 현재의 내가 동경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그들의 행복을 질투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남편과 나는 딱히 딩크는 아니다. 둘 다 아이를 좋아하며, 특히 나이가 꽤 있는 남편은 내심 아이를 원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내게서 태어난 아이가 과연 행복할지에 대한 고뇌를 수없이 떠올린다. 사실 내가 엄마가 되기는 쉽지 않다. 현재까지 많은 약을 먹고 있으며, 수술한 뇌가 아직 정상적으로 회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혹여 태어난 아이가 아프기라도 한다면, 나는 새롭게 태어난 아이에게 정말 몹쓸 죄를 짓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현재 나와 남편은 딩크 아닌 딩크(비자발적 딩크.. 일까?)로 살아가고 있다.
기적적으로 약을 끊는다고 해도, 임신 중에 내 몸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임신은 엄마의 몸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다. 그 변화가 내게 약일지 독일지는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출산 과정에서도 위험은 존재하며, 이 경우 산모와 아이의 건강 모두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내 삶에 아기는 없나 봐."
"괜찮아. 나에겐 자기가 제일 중요해. 우리 둘이서 행복하게 살자."
남편은 울적해하는 나를 다독이면서도, 내가 약을 끊는데 실패할 때마다 매우 속상해한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를 걱정하는 나에게, 본인이 육휴를 쓰고 아이 케어에 전념하겠으니 나는 직장에 다니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물론 나는 "쉽게도 말하네."라고 대꾸하며 남편의 옆구리를 쿡 찔렀지만 마음 한쪽이 쓰리고 우울해 지고는 한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두 팔로 온전히 안아줄 수 없다. 아이의 걸음걸이에 함께 맞춰줄 수 없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어렵고, 예쁘게 머리를 땋아줄 수도 없다. 제일 기본적인 기저귀를 갈거나 젖병을 물리는 것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이렇게 '못하는 게' 많은 엄마를 아이가 사랑해 줄까.
정상인에게도 엄마가 되는 것은 많은 생각과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라는 소망대신 10개월 내내 온갖 걱정으로 채워질까 봐, 그게 무섭다.
아이가 없어도 행복할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차라리 아이를 원하는 마음이 확고하고 가득했다면, 그럴 수 없는 현실을 원망하며 눈물이라도 왈칵 쏟았을 거다. 하지만, 뭐랄까. 씁쓸하긴 하지만 울고 싶지는 않다.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한 친구들이 부럽지만, 내가 엄마가 된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정말 나는, 어쩌고 싶은 걸까.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뉴스에서 아동학대나 유기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오면 정말이지 분개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저 아이가 내 아이였다면, 나는 절대로...'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깜짝 놀라곤 한다. 아이가 겪은 상처에 '만약에'라는 가정은 기만이다. 생각만으로는 뭔들 못할까. 나는 생각이지만, 아이에게는 현실이다.
부모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도 고민하고, 아파하고, 헤매고 있다.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나 스스로도 삶을 이어나가기 힘든 이 상황에서?
조금은 냉정해지는, 차가운 겨울날의 상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