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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냥 Jan 26. 2024

니트 원피스를 사랑하는 이유

등지퍼와의 고군분투 끝에 취향을 찾다.

  원피스를 좋아한다. 날씬한 체형이 아니기에 허리에서부터 떨어지는 A라인 원피스를 주로 입는다. 바쁜 아침 이런저런 옷을 꺼내지 않고도 원피스 한 벌이면 꽤나 '갖춰 입은' 모양새가 된다. 어쩌면 패션센스가 없는 내가 최대한으로 머리를 굴려 선택한 취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렇게 구구절절 변명하지만, 사실 원피스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귀엽기' 때문이다. 목 부분에 시폰 리본이 달려 있는 원피스, 카라 부분이 진주로 장식된 원피스, 소매 부분에 큐빅이 달려 있는 원피스 등등. 남들은 모르지만, 나만 아는 귀여움이 담긴 원피스가 좋았다.


  하지만 편마비 환자가 되고 난 후, 나의 원피스 사랑에 큰 에러가 생겼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 바로, 한 손으로는 원피스 뒤에 달린 긴 지퍼를 올리거나 내릴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이전에는 등 지퍼를 올리거나 내릴 때 양손의 감쪽같은 협업으로 성공했었다. 


  이 많은 원피스를 다 정리하기에도 아깝고, 이렇게 나는 취향까지 포기하며 장애와 맞서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 쿠땡에서 신박한 아이템을 발견했다.


  긴 줄에 갈고리가 달려서, 한 손으로 지퍼 손잡이 구멍에 갈고리를 걸어준 뒤 그대로 끈을 당기면 쉽게 지퍼를 올리고 내릴 수 있다고 한다. (정식 명칭은 지퍼 풀러라고.) 한 손 머리끈의 실패를 겪었기에 몇 번이고 고민하다가 그 제품을 구입했다. 그리고 원피스를 입을 때 갈고리를 걸고 천천히 잡아당기는데...


  '투욱'


  갈고리가 자꾸만 구멍에서 빠졌다. 이런! 그럼 옷을 못 입잖아. 나는 이번에도 실패 인가 하는 생각에 다급히 남편을 불렀다.


  "오빠! 이거 나 구멍에 제대로 끼운 거 맞지?"


  "응응. 잘 찾았네."


  "근데 이거 지퍼 올리려고 하면 그대로 빠져버린다?"


  "음..."


  남편은 내가 건넨 줄을 이리저리 보더니 무언가 대단한 걸 깨달았다는 듯 대답했다.


 "이거, 한 손으로는 올리기 힘들겠는데? 사진에서도 한 손으로 옷을 잡고 올리잖아. 지퍼 내리는 용이야 이거."


  오... 사실 내심 예상하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지퍼를 내리는 건 물론이고, 올리는 도구 또한 절실히 필요했다. 이번에는 남편이 지퍼를 올려주고, 도구를 사용해서 천천히 지퍼를 내리자 스르르륵 지퍼가 마술같이 내려갔다.


  "와, 잘 되네."


  "물론 좋아. 등지퍼 내리는 것도 못했으니까. 그런데 나는... 혼자서도 척척 옷을 입고 싶었단 말이야. 결국 오빠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건 똑같네."


  "지퍼가 안 달린 옷을 입으면 되잖아?"


  "그렇지만... 대부분 원피스는 지퍼가 있고... 앞에서 단추로 잠그는 재킷형 원피스가 있기는 한데 맨날 그것만 입을 수는 없고..."


  "으음, 어렵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아침에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지퍼를 올리고 퇴근해서는 도구를 사용하여 지퍼를 내렸다. 자연스럽게 언제부터인가 원피스를 입지 않게 되고, 고무줄 바지와 티셔츠를 사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다, 인스타그램 광고에서 너무나 내 취향인 원피스를 발견하고 나는 바로 남편에게 메신저로 오두방정을 떨었다.


  "대박! 귀여워! 심지어 니트 원피스인데 배 부각도 안돼!"


  처음 보는 사이트고, 심지어 한국 브랜드도 아니어서 사기가 아닐까 의심했지만, 다행히도 상품은 2주 만에 곱게 포장되어 내게 도착했다.



해당 브랜드의 광고가 절대 아님을 밝힙니다.


  "지퍼 없이도 혼자 뒤집어서 입을 수 있고, 심지어 예뻐! 따뜻하고 재질도 좋아!"


  "예쁘네. 근데 한국에는 이런 거 안 팔아?"


  "찾아보면 있기야 할 텐데... 대부분은 몸에 딱 달라붙어서 내가 입으면 뱃살이 더 나와 보이더라고. 게다가 얇아서 한겨울에는 못 입는 것도 있고."


  매번 인터넷쇼핑에서 참패를 당한 내가, 옷을 그것도 해외배송 사이트에서 성공을 거두다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나는 겨울 내내 새로 산 니트 원피스를 닳도록 입었다. 너무 유치해 보이지 않게 적당히 포인트가 들어간 귀여움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게 내 옷장에는 조금씩 야금야금 니트 원피스가 채워지고 있다. 혼자 입을 수 있고, 따뜻하고, 예쁘기까지 한 이 옷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편마비여서 불편하지만, 내 고유의 개성과 취향은 가능한 지켜 나가고 싶다. 장애에 내 삶의 많은 것들을 내어주고 싶지 않다. 그러니 나는 마음에 쏙 든 니트원피스를 입고, 외출한다. 이게 나니까. 나의 개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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