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지퍼와의 고군분투 끝에 취향을 찾다.
원피스를 좋아한다. 날씬한 체형이 아니기에 허리에서부터 떨어지는 A라인 원피스를 주로 입는다. 바쁜 아침 이런저런 옷을 꺼내지 않고도 원피스 한 벌이면 꽤나 '갖춰 입은' 모양새가 된다. 어쩌면 패션센스가 없는 내가 최대한으로 머리를 굴려 선택한 취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렇게 구구절절 변명하지만, 사실 원피스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귀엽기' 때문이다. 목 부분에 시폰 리본이 달려 있는 원피스, 카라 부분이 진주로 장식된 원피스, 소매 부분에 큐빅이 달려 있는 원피스 등등. 남들은 모르지만, 나만 아는 귀여움이 담긴 원피스가 좋았다.
하지만 편마비 환자가 되고 난 후, 나의 원피스 사랑에 큰 에러가 생겼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 바로, 한 손으로는 원피스 뒤에 달린 긴 지퍼를 올리거나 내릴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이전에는 등 지퍼를 올리거나 내릴 때 양손의 감쪽같은 협업으로 성공했었다.
이 많은 원피스를 다 정리하기에도 아깝고, 이렇게 나는 취향까지 포기하며 장애와 맞서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 쿠땡에서 신박한 아이템을 발견했다.
긴 줄에 갈고리가 달려서, 한 손으로 지퍼 손잡이 구멍에 갈고리를 걸어준 뒤 그대로 끈을 당기면 쉽게 지퍼를 올리고 내릴 수 있다고 한다. (정식 명칭은 지퍼 풀러라고.) 한 손 머리끈의 실패를 겪었기에 몇 번이고 고민하다가 그 제품을 구입했다. 그리고 원피스를 입을 때 갈고리를 걸고 천천히 잡아당기는데...
'투욱'
갈고리가 자꾸만 구멍에서 빠졌다. 이런! 그럼 옷을 못 입잖아. 나는 이번에도 실패 인가 하는 생각에 다급히 남편을 불렀다.
"오빠! 이거 나 구멍에 제대로 끼운 거 맞지?"
"응응. 잘 찾았네."
"근데 이거 지퍼 올리려고 하면 그대로 빠져버린다?"
"음..."
남편은 내가 건넨 줄을 이리저리 보더니 무언가 대단한 걸 깨달았다는 듯 대답했다.
"이거, 한 손으로는 올리기 힘들겠는데? 사진에서도 한 손으로 옷을 잡고 올리잖아. 지퍼 내리는 용이야 이거."
오... 사실 내심 예상하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지퍼를 내리는 건 물론이고, 올리는 도구 또한 절실히 필요했다. 이번에는 남편이 지퍼를 올려주고, 도구를 사용해서 천천히 지퍼를 내리자 스르르륵 지퍼가 마술같이 내려갔다.
"와, 잘 되네."
"물론 좋아. 등지퍼 내리는 것도 못했으니까. 그런데 나는... 혼자서도 척척 옷을 입고 싶었단 말이야. 결국 오빠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건 똑같네."
"지퍼가 안 달린 옷을 입으면 되잖아?"
"그렇지만... 대부분 원피스는 지퍼가 있고... 앞에서 단추로 잠그는 재킷형 원피스가 있기는 한데 맨날 그것만 입을 수는 없고..."
"으음, 어렵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아침에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지퍼를 올리고 퇴근해서는 도구를 사용하여 지퍼를 내렸다. 자연스럽게 언제부터인가 원피스를 입지 않게 되고, 고무줄 바지와 티셔츠를 사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다, 인스타그램 광고에서 너무나 내 취향인 원피스를 발견하고 나는 바로 남편에게 메신저로 오두방정을 떨었다.
"대박! 귀여워! 심지어 니트 원피스인데 배 부각도 안돼!"
처음 보는 사이트고, 심지어 한국 브랜드도 아니어서 사기가 아닐까 의심했지만, 다행히도 상품은 2주 만에 곱게 포장되어 내게 도착했다.
"지퍼 없이도 혼자 뒤집어서 입을 수 있고, 심지어 예뻐! 따뜻하고 재질도 좋아!"
"예쁘네. 근데 한국에는 이런 거 안 팔아?"
"찾아보면 있기야 할 텐데... 대부분은 몸에 딱 달라붙어서 내가 입으면 뱃살이 더 나와 보이더라고. 게다가 얇아서 한겨울에는 못 입는 것도 있고."
매번 인터넷쇼핑에서 참패를 당한 내가, 옷을 그것도 해외배송 사이트에서 성공을 거두다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나는 겨울 내내 새로 산 니트 원피스를 닳도록 입었다. 너무 유치해 보이지 않게 적당히 포인트가 들어간 귀여움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게 내 옷장에는 조금씩 야금야금 니트 원피스가 채워지고 있다. 혼자 입을 수 있고, 따뜻하고, 예쁘기까지 한 이 옷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편마비여서 불편하지만, 내 고유의 개성과 취향은 가능한 지켜 나가고 싶다. 장애에 내 삶의 많은 것들을 내어주고 싶지 않다. 그러니 나는 마음에 쏙 든 니트원피스를 입고, 외출한다. 이게 나니까. 나의 개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