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일은 어디에나 있어
일과 휴식을 적절히 조절하고픈 나에게 '워라밸'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학교에서 일하면서 알게 모르게 쌓인 스트레스를 제때 해소하지 않으면 꼭 탈이 난다. 그래서 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취미 생활에 진심이다. 하지만 어쩌지, 편마비 환자가 되고 나서 이전에 충분히 즐겨온 취미 생활을 대부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의 소소한 재미들을 놓칠쏘냐. 나는 내가 한 손으로도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찾아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게임'이다. '게임'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방구석 히키코모리 같은 눈초리로 보다가 어떤 게임을 하는지 묻는다. 그러다 내가 하고 있는 게임이름을 이야기하면 빵 터지곤 한다.
현재 내가 즐기고 있는 게임은 [프린세스 메이커]와 [심즈] 둘 다 아주 오래된 고전 게임인데, 심즈는 최근에도 확장팩들이 나오고 있어서 아주 개미지옥이다. 프린세스 메이커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 친척 오빠가 선물해 주어 플레이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 기회에 다시 도전해 보았다. 프린세스메이커 2, 3, 4, 5를 전부 다 플레이해 보았지만 역시나 가장 재미있는 건 2탄이다. 무사수행의 쏠쏠한 재미를 느끼려다가 몇 번이고 용사 엔딩을 본 적도 있다.
심즈는 남편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너무나 현실적인 3D 그림체에 거부감이 들어 괜찮다고 거절했다. 프린세스메이커의 귀욤뽀짝 한 일러스트에 더 익숙한 나에게 심즈의 벽은 높았다. 그러다 마침 심즈 스팀버전이 할인해서 남편의 권유에 조심스럽게 플레이해 보았는데...
"뭐야 이거?! 왜 이리 재미있어?"
한동안은 주말 내내 심즈만 플레이할 정도로 푹 빠졌다. 물론 만든 심들로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아이템을 이용해서 집을 짓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아예 집터부터 만들고 벽을 쌓아 올리고, 다양한 아이템들로 방을 꾸미는 요소는 내게 있어 완전히 혁신적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집 짓기에 진심인 게임이 있다니! 심즈 세상에서 내가 꿈꿔온 집들을 짓고 또 지었다. 서툰 솜씨지만 그래도 내가 만든 집에서 심들이 뽈뽈 거리며 돌아다니며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 한때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꿈꾸기도 했던 소녀는 이제 결혼한 아줌마가 되어 가상 세계에서 집을 짓고 있다.
무엇보다 [프린세스 메이커]와 [심즈] 둘 다 오른손만으로도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게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슈팅게임이나 리듬 게임은 양손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두 게임은 그렇지 않아서 부담이 없다.
이 외에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보드게임을 하기도 한다. 한 손으로도 할 수 있는 도블을 주로 많이 하고, 할리갈리와 젠가도 어렵지만 한 손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루미큐브나 다빈치코드도 무리 없이 가능하다. 보드게임을 구입하기 전에 내가 충분히 플레이할 수 있는지 고려해 보며 구입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편마비로 한 손을 못쓰게 되었다고 해서 이전의 일상을 잃고 싶지는 않다.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그 안에서의 최선과 타협해 나가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마 지금 하고 있는 심즈가 질린다면,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또 다른 게임을 찾을 것 같다.
그래도, 남편이 좋아하는 '오버워치'를 함께 플레이해 보고 싶었는데, 한 손으로는 불가능해서 그것만큼은 조금 아쉽다. 남편이 좋아하는 것은 함께 공유하고 싶은데, 그게 나의 장애로 인해 좌절되는 느낌이랄까. 남녀노소 모두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는 RPG나 슈팅 게임이 많이 개발되었으면 하는 건 너무 많은 욕심일까.
어쩔 수 없는 건 없는 거다. 아쉬움은 아쉬움으로 놔두면 된다. 아쉬운 감정을 깊게 파고들어 그 마음이 우울이나 좌절로 변질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오늘의 즐거움에 최선을 다해야지. 오늘은 심즈로 어떤 테마의 집을 지으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