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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냥 Jan 25. 2024

편마비 환자의 머리 묶기

머리 묶다가 실명할 뻔한 웃픈 일화

  "팅!"


  "아얏!!"


  기대감을 잔뜩 가지고 무려 아마존에서 구입했던 한 손 머리묶기 끈의 배신이었다. 환측 팔에 줄을 감고 버튼을 누른 뒤에 조금씩 끈을 잡아당기면 한 손으로도 포니테일을 만들 수 있다는 머리끈! 유튜브에서 One hand hair tie를 검색하다가 발견해 남편에게 며칠을 사달라고 조른 아이템이었다. 남편은 '내구성이 약해 보이는데...' 라며 걱정을 표했지만, 더운 여름. 반다나로 겨우 연명하고 있던 나에게 한 손으로도 머리를 묶을 수 있다고 광고하는 이 제품은 마음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배송된 헤어 타이는 보기엔 음... 마치 옷에 달린 끈 같았다. 도무지 헤어끈이라고는 볼 수 없는 투박하고 딱 기능성만 고려한 듯한 디자인. 하지만 뭐 디자인이 대수일까. 머리만 묶어진다면 만사 오케이라며 동영상에 나온 설명 대로 차례차례 따라 해 보았는데...


  "이게 맞아??"


   너무나 깔끔하게 휘리릭 머리를 묶는 동영상 속 외국인에 비하면 내 머리는... 완전 추노 그 자체. 산발이 따로 없었다. 물론, 예시 사진에 비해 내 머리카락은 매우 얇고 숱도 빈약했다. 하지만... 그래도 에이 설마. 연습하다 보면 되겠지. 나는 거울 속 머리 산발녀가 나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며 머리 묶기에 도전했다. 침대에 누워서도 해보고, 문고리에 끈을 묶어서 당겨 보기도 하고. 하지만 결과는 늘 똑같았다.


 그러다 최후의 수단으로 발로 끈 한쪽을 밟고, 고개를 숙인 후 서서히 끈을 잡아당기는데... 파탓! 하는 소리와 함께 발로 밟고 있던 끈이 정확히 눈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눈 옆에 생긴 선명한 1자 빨간 줄. 탄성이라는 놀라운 물리적 요소로 내 얼굴로 날아온 고무줄의 위력은 대단했다. 나는 눈물을 글썽 거리며 눈 옆 상처에 후시딘을 발랐고, 아마존에서 구입한 개당 만원이 넘는 머리끈은 안전을 이유로 쓰레기통으로 폐기되었다.


이렇게 묶을 수 있다고 했잖아요...


  한 손 머리끈의 교훈으로 나는 몇 달간은 머리 묶기에 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또한, 외국도 상품에 대한 과다광고가 심하다는 사실에 혀를 쯧쯧 찼다. 꼭 머리를 묶어야 할 일이 있으면 1자 헤어핀이나 앞머리 고정용 악어핀 2개를 양 옆으로 꼽아 고정하곤 한다. 1자 헤어핀도 길이에 따라 한 손으로도 되는 것과 불가능한 것이 있어서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상당했다.


  가장 간편하고 쉬운 건 악어집게핀 2개를 이용하는 것! 밖에서 못 한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나, 집에 있을 때는 이만한 방법이 없다. 조금 더 간편하고 싶은 날엔 반다나 같은 천으로 된 헤어밴드를 사용한다. 하지만 간혹 반다나도 관자놀이를 눌러 두통을 유발하는 제품들이 있어서 잘 찾아보고 고르게 된다.

제일 애용하는 악어핀.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모아서 고정한다.

  어찌어찌 타협하며 나만의 방법으로 머리를 묶고 있지만, 이 또한 로우 포니테일(귀 아래로 낮게 머리를 묶는 것)만 가능하기 때문에 가끔은 시원하게 똥머리나 높게 하나로 묶는 업스타일 포니테일이 하고 싶을 때는 살짝 아쉽다. 이도저도 귀찮아서 단발로 스타일 변신을 한 적도 있지만, 아이유를 기대했다가 최양락(죄송합니다..)씨가 되고 난 이후로 다시 머리를 기르게 되었다. 게다가, 단발을 쉽게 보면 안 된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꼈는데, 긴 머리 보다 더 고난도의 섬세한 관리가 필요한 스타일이 단발이었다.


  지금도 어깨 아래로 구불 거리는 머리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혼자서도 끈을 가지고 머리를 묶는 데 성공하고 싶다. 의외로 제일 답이 나오지 않았던 '한 손으로 머리묶기'는 아직까지도 헤매며 이런저런 방법들을 탐색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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