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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케이 Mar 27. 2023

버려질 것과 남겨질 것들

미련을 대하는 자세

나는 주기적으로 물건을 버린다. 창고나 옷방을 정리하고 버릴 것을 정하는 데에는 나름에 규칙이 존재한다. 이 물건을 마지막 사용한 게 언제인지를 생각해 보고 얼마나 필요한 물건인지를 따져본다.
그렇게 나름의 합리적인 기준을 세워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하지만,
결국에 최종 결정은 감성적으로 처리해버리기 일쑤다.
 
'이 옷은 추억이 너무 많아'
'오래되긴 했지만 예전에 너무나 아끼던 거였잖아' 하며 스스로를 설득하고 만다.
나에게 설득당해버리면 그 물건은 다시 1년쯤 생명을 연장한다.
하지만 재고 대상이 되었던 물건들의 생명은 기껏해야 그로부터 1년으로 마무리가 된다.
버리기로 마음먹었던 것들은 반드시 버려진다는 필연성의 논리랄까.
나에게 버려진 옷들과 물건들이 표정을 지어 보일 수만 있다면 슬픔이 아닌 서글픔의 무표정을 보여줄 것만 같다.
 
때때로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공간을 비워내기 위해 버림을 택하지만 나는 버리는 데에 늘 고충을 겪는 편이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한 장면이 나를 단호하게 결단할 수 있게 도와준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기 위해 담배와 라이터를 기꺼이 사는 친구가 있었다.
한 개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구입한 담배와 라이터는 흡연욕 가득 품고 뜨거운 연기 속으로 장렬히 불태우고는 담뱃갑과 스티커조차 제거되지 않은 라이터와 함께 버려지곤 했다.
 
유독 그 모습이 떠올랐던 건 무엇이든 버리기 쉬운 사람의 이미지가 '그 친구'로 대신됐기에 '버리기 쉬운 마음 상태'에 대한 부러움과 동시에 나와는 다른 모습에서 오는 이질감이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무엇이든 버리기 쉬운'사람으로 변하게 했던 걸까.
나는 무엇 때문에 '버리기 어려운'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때로는 버리고 싶은 것이 물건이 아닌 형상도 정체도 없는 것일 때가 있다.
결심하지 못하는 마음일 때도 있고, 잊고 싶은 기억을 자주 들추는 내 모습일 때도 있고, 쓸데없이 오지랖을 부리고픈 마음일 때도 있다.
그때마다 나는 의도하지 않은 채 '그 친구'를 떠올렸다.

떠올렸다기엔 너무도 불연듯 훅-하고 침범하듯 내 머릿속으로 달려들었다는 것이 어울린다.

버리지 못하는 자와 너무도 쉽게 버릴 수 있는 자.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후자에 가까운 체질이라 늘 물건을 정리하며,
그 안에 버리지 못했던 마음을 잘 담아 보내려 애썼던 것 같다.
 
오늘도 커다란 대형마트 장바구니 한가득 지난 계절의 옷을 털어 넣으며 버려질 것과 다시 남겨진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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