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디아케이 Mar 30. 2023

8년 전 나는 강아지를 낳았다

딩크가 펫팸이 되기까지

어릴 때부터 나는 유난히 동물을 사랑했다.

휴가지에서 본 염소와 놀다가 엄마에게 집에 함께 가면 안 되냐며 떼쓰던 기억이 날 때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난다.

엄마에게 어찌나 혼이 났는지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다람쥐를 보러 아차산 부근을 기웃거리다가 차에 치인 고라니의 곁을 구조대가 올 때까지 지켰던 어린 마음이 자라 비로소 나는 개 엄마가 되었다.






보리는 2015년 5월 7일 전문 브리더(breeder)의 가정에서 또래에 비해 늠름한 우량 견으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여동생과 함께 입양을 하는 조건으로 한 남자에게 분양되었다.

그곳에서 여동생인 작은 암컷이 먼저 되팔아졌고, 덩치 크고 사람을 무서워하는 수컷 보리는 그곳에 남겨져 다음 입양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해 9월 우리 부부가 보리와 처음 만난 날을 나는 아직 생생히 기억한다.

싸늘한 원목바닥에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 축축한 털,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귀엽게 처진 눈의 작은 강아지.

원목으로 된 어둑한 거실은 에어컨 바람에 지나치게 싸늘했고, 강아지가 편히 몸을 뉠 수 있을 곳도 의지할 사람도 없어 보였다.

거실에 서 있던 두 남자의 눈빛과 어색한 거리가 이 강아지가 파양 되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혹시 모견이 함께 있나요?”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가정견 (어미와 함께 있으며 가정에서 출산된)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견이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젊은 남자는 그제야 사정을 털어놓았다.


“원래는 제가 강아지 카페에서 암, 수 두 마리를 같이 분양받았는데… 도저히 키울 수가 없을 것 같아서요. 아버지는 오늘 누구라도 데려가지 않으면 버리겠다고 하셔서…”


생각해 보니 거실에 서 계시던 노인은 한 시라도 빨리 보리를 나에게 보내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강아지 엉덩이를 발로 쓰-윽 밀며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기를 재촉했다.


“저쪽으로 가봐. 무슨 개가 이래”


나는 그 분위기와 온도, 무거운 공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무엇보다 사랑받아 마땅한 강아지에게 그곳의 분위기는 온도만큼이나 너무 차갑게 느껴졌다.


“지금 같이 근처 동물 병원에 가 주실 수 있나요? 건강 상에 문제가 없다면 제가 데려갈게요.”


동물 병원에서 보리는 가벼운 감기 증상이 있다는 진단이 내려져 5일 치 약을 처방받았다.

목욕 후 털을 말리지 않은 채 에어컨바람을 쐐서 생긴 감기증상이리라 짐작했다.

내 품에 안겨 가녀린 몸을 파르르 떠는 강아지를 우리는 그날 가족으로 맞이했다.

병원에서 나오며 보리를 데려가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니 그제야 젊은 남자는 충격적인 진실을

한 번 더 털어놓았다.


“사실은 오늘 그쪽이 데려가지 않으면 번식장에 종자견으로 보내려고 했어요. 워낙 혈통이 좋아 연락 온 곳이 많았거든요.”


남자는 보리의 종자가 좋은 견종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했지만 나는 마치 협박처럼 들렸다.

종자견이라면 한 달에 몇 차례 번식을 위해 발정제를 맞추고, 죽을 때까지 번식의 노예로 살아가야 하는 그런 곳을 말하는 걸까.(갈색 모(毛)의 페키니즈인 보리는 페키니즈 중에도 특이한 색감의 털을 가지고 있다. 특이 모색과 종자가 번식장 업자들의 눈에 뜨였을게 뻔했다.)

이 남자는 이토록 당당하게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처음부터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한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집으로 함께 오는 차 안에서 보리는 작은 몸을 차 시트에 납작하게 붙이고는 사시나무 떨 듯했다. 

가족과의 이별을 여러 번 겪은 아픔 때문인지 보리는 좀처럼 사람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여느 강아지들처럼 사람 손을 핥거나 안기는 일도, 배를 보여주는 일도 없었다.

그저 짤따란 네 다리를 모두 펴고 슈퍼맨 자세로 누워있기를 즐기는 어눌한 아이였다.

보리가 내게 다가와 자연스럽게 배를 보여주기까지는 그로부터 꼬박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2015년 9월 생후 4개월 차 보리



보리를 아들로 삼고 가족으로 함께한 지도 올해로 8년째가 된다.

우리에게는 더없이 사랑스럽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로 매일 반짝반짝 빛나는 중이다.

동물을 사랑하고 교감을 하길 즐기지만, 딩크를 선택한 나에게 자식 같은 마음으로 가족이 된 동물은 보리가 유일하다.

보리와 함께하기 전까지는 동물의 ‘친구’였다면, 보리에게는 기꺼이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게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딩크를 마음먹은 부부에게 찾아온 작은 강아지는 이제 둘도 없는 금쪽이가 되었다.



2021년 함께 쇼핑하는게 즐거운 도시견



완연한 봄을 품은 집 앞 공원 산책길을 보리와 함께 걷는다. 

보폭을 맞추며 걸어 나가는 발걸음이 오늘따라 봄기운만큼 생기롭게 느껴진다.

작은 눈을 통해 함께 세상을 보고, 그의 평온한 우주가 되어주겠노라며 조용히 다짐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버려질 것과 남겨질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