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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케이 Apr 02. 2023

계절을 담은 엄마의 택배상자

택배는 사랑을 싣고

‘카톡!’ 

이른 아침 울리는 카톡 메시지 소리가 집 안의 정적을 깬다.

‘고객님! 우체국입니다. 소포우편물을 오늘 배달할 예정입니다.’ 

딱히 주문한 물건이 없는데 무슨 택배일까 싶어 빠른 속도로 보내는 사람의 이름을 살피니 친정엄마 김여사 님이시다.


친정집은 몇 년 전 암으로 투병 중이신 아버지의 회복을 위해 강화도로 이사를 하였다.

논과 밭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담한 2층 벽돌집은 노년의 부부가 살아가기에 더없이 좋은 여건이라 세 딸 모두 반겼다.

도시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두 분에게 강화도에서의 삶은 남은 노년에 자연을 벗 삼아 보내고 싶은 로망의 실현이었다.

거실에서 창문을 열면 계절의 시계에 맞춰 자연은 색색이 갈아입은 옷으로 경이로움을 뽐냈고, 아담한 정원은 적적할 일 없을 만큼 빠르게 잡초를 키워냈다.

작고 아담한 잔디밭을 얼마나 열심히 가꾸셨던지 부드럽고 윤기 나는 잔디는 틈이 없을 만큼 빼곡히 자라났다. 



강화도 부모님댁



강화도로 부모님이 이사를 한 후 엄마는 때때마다 계절을 담은 음식들을 세 딸에게 택배로 보내곤 하신다. 

바쁘게 사는 딸들에게 반찬을 가지러 오라는 것 또한 부담이 될까 싶어 엄마가 찾은 배려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택배는 계절을 실어 나른다. 봄이면 봄나물과 열무김치, 여름이면 오이소박이, 가을이면 게장과 총각김치, 겨울이면 된장과 김장김치 등 그때그때 보내주시는 음식을 받을 때마다 나이 드신 엄마의 정성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울컥해진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음식을 보내주셨을까.

하얀색 스티로폼 박스에 행여나 국물이 셀까 비닐로 여러 겹을 싼 반찬통 두 개가 꽉 들어차 있다. 손으로 풀기 힘들 만큼 꽉 동여매 가위로 매듭 아래를 싹-뚝 잘라내니 그제야 반찬의 정체가 드러났다. 하도 여러 번 보내시다 보니 택배를 포장하는 스킬 또한 나날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이번에는 계절마다 잊지 않고 해 주시는 간장게장과 열무김치다.

열무김치의 뚜껑을 열어보니 담그자마자 바로 보내신 것으로 보이는 알싸한 양념냄새가 났다.

또 하나의 동그란 뚜껑의 투명 플라스틱 통을 열어보니 작은 게 들이 여러 마리 담겨 풍미 좋은 게장이 달큼한 향내를 풍겼다.



나날이 늘어가는 스킬의 택배포장법



엄마의 간장게장과 열무김치



엄마는 강화도에서 전과 다르게 다양한 음식의 조리법을 시도하며, 가족들에게 나누는 즐거움을 느끼고 계신다.

강화도는 도시와 다르게 사방이 식재료로 둘러 쌓여 있다. 텃밭에 기르는 상추, 오이, 가지, 고추와 이웃집에서 때마다 주는 쌀, 참기름 할 것 없이 모두 이웃과 나누는 농촌의 모습 그대로이다. 마치 장수 드라마로 종영했던 ‘전원일기’를 연상케 한다.

‘딸들아 옆 집 할머니가 오이를 잔뜩 가져다주셔서 오이지랑 오이소박이 조금 담갔어. 시간 나면 와서 가져가’

택배를 보내실 때를 제외하고도 엄마는 계획에 없는 식재료가 생길 때면 오래 보관하고 먹을 수 있는 장아찌나 염장식품을 뚝딱 해내신다.


김치나 반찬은 마트에서 사면 그만이지만 제철을 담아 보내시는 엄마의 반찬에 비할 수가 없다.

잦은 외식으로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거의 없는 우리 부부도 엄마의 반찬이 택배로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집밥을 구경하는 호사를 누린다.

게딱지를 떼내니 작은 게딱지에 알이 꽉 찬 알배기다. 따뜻한 밥 한술을 넣어 숟가락으로 쓱쓱 비비니 달큼하고 감칠맛 나는 간장이 밥알에 쏙 배여 그 맛이 기가 막히다.

감사한 식탁을 선물 받은 날이면 나는 엄마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용돈을 보내드린다.


‘엄마 귀한 음식 감사히 먹었어요. 너무 맛있어서 그냥 먹을 수가 있어야죠.’

‘뭘 이렇게 많이 보냈어. 게장 또 해서 보내줄까?’

‘아니에요. 엄마 쓰세요. 그건 그냥 제가 드리는 용돈이에요.’


아마도 다음 주면 또 다른 엄마의 택배가 도착할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봄나물을 핑계 삼아 택배를 차곡차곡 포장하시겠지.

두 손 한가득 반찬을 들고 우체국으로 향하실 엄마의 모습이 오늘따라 마음에 담긴다.

부디 오래도록 엄마의 반찬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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