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했던 내 마음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대학생 때 4년간 기숙사 생활을 했을 때 이후 독립하게 된 건 2017년이었고 그 이유는 결혼이었다.
독립이나 자취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부모님에게 빌붙어 살며 생신과 어버이날만 챙겨드리는 맏딸이었다.
그 외에 내가 벌었던 수입은 저축하고 사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들에 투자했다.
결혼 후엔 경제적 독립이었다. 신혼살림을 꾸려나가야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다 필요했고 다 사야 했다. 둘이 합쳐 벌이가 나쁘지 않았던 그 당시 나는 참 많은 것들을 사들였고 물질적인 욕구에 폭발이
일어났었다. 마음이 헛헛할 때마다 집엔 택배상자가 쌓여갔다. -시간이 지나고 추후에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외로움을 느끼는 마음을 쇼핑으로 다독였다.- 보이는 것에 집착 아닌 집착을 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후 4년의 결혼생활을 끝으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2021년 9월 이후로 완전한 자립, 그리고 완전한 독립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이 자유로움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그저 좋기만 했다. 그러던 최근 몇 달 깊은 고민거리가 있었다.
1인가구의 삶은 특히나 여자 혼자 사는 삶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고 현실에 부딪히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혼자 해내야 한다. 나 혼자니까. 나 밖에 할 수 없다.
누군가가 대신 돈을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의 끼니를, 나의 생활을 책임져줄 사람이 없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가버리는 통장잔고가 야속했다. 고정지출 비용과 공과금 그리고 월세를 생각하면 매달 빠듯하고 걱정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매장을 운영하고 집도 월세로 살고 있기 때문에 고정 지출 비용이 크다.
집을 전세로 옮겨볼까 싶어 은행에도 다녀와봤지만 나에게 돌아온 건 잔혹한 현실뿐이었다. 내 능력으론 옮길 수 없었다. 이게 현실인가 잠깐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름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울을 느끼는 것도 잠시 마냥 한탄만 하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우울감을 이제는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의식주는 중요하니까 집을 포기할 순 없었다.
특히나 내 시간을 가지면서 에너지를 충전하기에 내 공간을 저버릴 순 없다.
그렇다면 매장을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직해야 하나 아주 잠깐 고민했지만 멈췄다.
나이 어린 친구들과 경쟁하면서 부딪히고 싶진 않았다.
관리직으로 가볼까 생각하던 찰나 마침 눈여겨보고 있던 곳에 채용공고가 올라와 이력서를 준비했다.
메일을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은 생각들로 머릿속이 꽉 채워져 갈 즈음 내 몸에선 또 신호를 보냈다.
'너 지금 스트레스받고 있어, 공격개시!'
손과 발에 또 물집이 잡히고 수포가 올라왔다.-나는 몇 년째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다.-
이 참에 아예 직업을 바꿀까도 고민했다. 다른 업종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은 예전부터 있었다.
오지랖 넓게 워낙 하고 싶은 게 많고 좋아하는 게 많다 보니 끝까지는 못 가더라도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를 조금씩 탐색해 보고 시도는 해 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그날은 정확히 기억한다. 2023년 뜨거운 여름 말복이었다.
아침 뉴스엔 태풍 '카눈'의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그날 아침,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꽤나 자유로워 보였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며 사람 많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고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충분히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몇 달 내가 한 고민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매 달 나가는 월세 때문에 이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포기하고 다시 월급제의 삶을 살려고 했던 거냐고 내 마음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막상 이력서 넣고 합격통지서 받으면 지금의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하고 갈 수 있을까 싶었다. 월급은 적어도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이면 고민해 보겠지만 당장은 자신이 없었다.
갈팡질팡한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찬찬히 들여다보고 관조하면 진정 내가 무얼 원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현재 나는 충분히 즐기며 일에서의 의미를 찾았고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면서 산다.
그런데 내 일에서의 본질을 잠시 잊어버리고 당장 눈앞에 숫자에 급급했다.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했던 지난날이었다. 물론 매 달 여유가 있진 않지만! 저축도 못 하지만! 자차로 편하게 출퇴근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대화 나눌 수 있는 내 공간이 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내 시간이다.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어질러 놓은 것들만 청소하면 된다. 좋아하는 책도 보고 넷플릭스 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행복함. 위스키나 맥주, 와인 주종을 가리지 않고 혼술을 할 수 있는 편안함. 생활 패턴 동선에 맞추어진 집의 안온함. 적막이 흐르지만 차갑지 않고 따뜻하고 조용한 이 고요함.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다. 나 충분히 잘 살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