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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븐제이 Dec 31. 2023

나의 아저씨

2018년 봄, TV에서 드라마 예고편 하나를 보았다.

주인공이 고 이선균 님과 이지은(아이유)님이라니 뭔가 아이러니했다.

더군다나 화면상에서 느껴지는 침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설마 둘이 러브라인인 건가 저건 아니지 않나 싶었다.


훗 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나의 취향을 잘 아는 친구 D(끼리코 멤버)와 카페에서 커피와

맛있는 와플을 우걱우걱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네가 좋아할 거라며 '나의 아저씨'를 꼭 보라고 했다.

인생 드라마 하나 더 생길 거라며 귀가 아프도록 하도 권유하길래 집에 돌아와 작정하고 넷플릭스를 켰다.

평소 드라마 취향이 아예 다르지 않았고 이 친구가 알려준 드라마는 제법 재미있었다.

'미스터 션샤인', '슬기로운 감빵생활'도 그러했고 둘 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 인생드라마니 말 다 했다.


본격적으로 자리 잡고 드라마 재생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결과는 상상하는 그대로다.

정주행 해버렸다. 보고 또 봤다. 과연 내 삶의 인생드라마로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어떻게 이런 명작을 지금에서야 보게 되었는지, 한 편으로는 지금이라도 봐서 다행이었다.

입김이 서리는 추운 계절이 돌아오면 나는 줄 곧 '나의 아저씨'를 이따금씩 떠올리며 돌려보곤 했다.


한국사람 정서에 맞는 특유의 따뜻함을 넘어 뜨끈함이 느껴지는 진국인 드라마.

가족, 회사 생활, 동네 친구들, 아지트 등등 단어만 들어도 포근해지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유대감을 가지고 서로를 통해 치유와 위로를 겸비한 내용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모든 회차가 다 좋았지만 특히 좋아하는 씬이 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친구인 정희가 운영하는 술집에서 아저씨들이 모여서 허심탄회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다 같이 후계를 외치며 짠 하는 장면.

주인공인 박동훈(이선균)이 싸우고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동네 친구들이 우르르 뛰어나오는 장면.

여러 명이 함께 동네 끝 언덕에 있는 이지안(이지은)의 집까지 바래다주는 장면.

유독 안온하면서 아릿한 장면들이다.


가끔 힘들 때면 생각나는 내 머릿속을 울리는 대사가 있다.

10화에서 지안과 동훈이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나와 돌아가는 길에 말한다.

"항상 네가 먼저야. 옛날 일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지난 수요일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다.

차마 믿기지 않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인터넷뉴스를 검색하고 기사를 읽어보았다. 사실이었다.

마음이 이상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이 세상을 떠났다.

처음 안 좋은 상황의 기사가 나왔을 때도 믿을 수 없었지만 수사 결과가 알려주겠지 하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잘못했다면 인정하고 죗값 받으면 되지라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개인의 사생활이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온 국민이 다 알게 되었다.

그저 마음이 저릿한 건 어쩔 수 없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살아 숨 쉬는 순간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배우 ‘이선균’이라는 사람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먹먹하다.

팬으로서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

특히나 나의 인생드라마였던 ‘나의 아저씨’ 속 박동훈 캐릭터를 좋아했다.

내 기준 멋진 어른의 모습이었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여운을 남겼다.

5번도 넘게 보았던 드라마 속 주인공은 이제 존재하지 않지만 그가 남긴 작품이 남아있다.

드라마 속 캐릭터로 인해 위로받고 즐거웠고 행복했다.

오랜만에 재생 버튼을 눌러 살아생전 그가 남긴 '나의 아저씨'를 다시 보았다.

웃고 있는 미소 뒤에 감춰진 애잔함이 잘 녹아있는 박동훈 캐릭터를 연기한 그 자체가 그리웠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겠지만 여전히 믿기지 않는 나날이 당분간은 지속될 듯하다.

남몰래 그리워하며 '나의 아저씨'를 또 한 번 다시 보겠지.


부디 하늘에서 당신이 편안하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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