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윤동주
'서시: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된 전시였다.
서울시립미술관이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가나아트컬렉션 특별전을 기획하였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1940-50년대 현실에 대한 저항과 극복 의지를 담은 시를 작품과 함께 구성하여 울림을 전달한다.
첫 번째 파트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에서는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을 주제로 독립운동가, 강제 징용 노동자, 학도병, 위안부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다룬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의 한 부분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1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윤동주 <별 헤는 밤> 부분
1941.11.5.(유작)
손장섭의 <조선총독부>는
일제 식민통치를 상기시키는 조선총독부, 청나라 내정간섭을 벗어나 독립을 염원했던 독립문, 일장기를 상기시키는 핏빛 원과 순국한 애국지사들의 처참함을 시각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존재했던 시절의 어렴풋한 기억이 떠올라 보게 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섬 모양이 일본 해상군함 '도사'를 닮아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섬에 끌려간 조선인들의 강제노동 역사를 다룬다고 한다. 화면 중앙에는 잿빛 하늘 아래 군함도가 있고, 칠흑 같은 바다 아래에는 탄광 노동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노란 동그라미 패턴은 군함도를 격파하는 달의 모습을 연상시킨 것으로 과거 주권 없는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작가의 시각적 장치라고 한다.
찍어낸 듯 그려진 노란 동그라미 패턴 모양은 밤하늘의 보름달을 떠올리게 했는데 보름달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가족의 품으로 가고 싶은 조선인 노동자들의 소망과 독립에 대한 염원이 느껴졌다. 30도만 넘어도 덥고 힘든 요즘 날씨를 생각할 때 45도가 넘고 유독가스가 분출되는 해저탄광 속에서 일하는 조선인 노동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아팠던 작품이다.
화면 속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은 산의 굴곡진 능선과 겹쳐지고 그 너머로는 바다가 보이는데 이 풍경은 할머니의 고향 마산 무학산에서 바라본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강제로 위안부에 끌려간 할머니는 고초를 겪고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이웃과 가족에게 상처받고 다시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고 한다.
주름진 얼굴에서 삶의 무게가 느껴졌고 쓸쓸함이 느껴졌던 작품이다.
두 번째 파트는 6.25 전쟁의 참혹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다루었는데 구상 시인의 <초토의 시. 8-적군묘지 앞에서> 부분으로 시작하며 전시되어 있었다.
2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스러운 것이로다.
구상 <초토의 시. 8-적군묘지 앞에서> 부분
작가는 주로 '넋'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 삶의 애환을 표현하였는데 이 작품은 유년시절 6.25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충격과 상실감을 다룬다고 한다. 물감을 반복적으로 덧발라 거칠고 두꺼운 마티에르를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의 철책선을 표현한 이 작품은 거대한 철책과 기대어 있는 해골을 통해 분단과 죽음의 이미지를 표현하였다고 한다. '먼저보고 먼저쏘자'는 표지판은 당시 치열했던 교전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색채가 주는 불안감에서도 전쟁 당시 죽음에 두려움과 공포도 느껴졌던 작품이다. 뭉크 작품 <절규>도 떠올랐다.
세 번째 파트는 전쟁 이후 지속된 분단이 초래한 비극과 사회, 정치적 이슈를 다룬다.
3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박봉우 <휴전선> 부분, 1957.
이 작품은 전쟁 통에 생이별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실향민들의 애환, 통일에 대한 염원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철조망은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을 상징하고, 흙에서 솟아오른 노인의 손 하나가 철조망을 애타게 어루만지며 죽어서라도 고향에 이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시골길 위에 엄마와 아이가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한 이 작품은 통일에 대한 작가의 염원을 보여준다고 한다. 짧은 붓 터치와 탁한 느낌을 주는 색채 표현이 눈에 띄었는데 이는 차분한 색을 사용하여 내적 진실에 다가서게 만드는 작품의 특징이라고 한다.
'북한자수회화'시리즈 중 하나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폭발 장면을 손자수로 재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미지 도안을 제작해 천에 인쇄한 뒤, 중국을 거쳐 북한 자수 노동자들에게 보내고 완성된 작품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작업되었다고 한다.
멀리서 볼 때 사진 같아 보였는데 손자수 작품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남과 북을 오가며 협업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라웠다.
이 작품은 철근 구조 안에 군모를 쓴 남성의 두상이 갇혀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작품 속에 머리만 남은 남성의 무기력한 표정과 움푹 파인 얼굴과 깊고 작은 주름들에서 전쟁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파트에서는 예술이 정치적, 이념적 대립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 작품은 문자추상과 결합된 <군상> 시리즈 중 하나로 무수히 많은 사람의 형상을 군집되게끔 '그려서' 문자를 쓰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붉은색이 눈에 띄는 이세현의 <붉은 산수 70>은 군 복무 시절 야간 투시경을 통해 본 비무장지대의 붉은 풍경에서 제작되었다고 한다. 박희선의 <한반도-빛>은 부 팔 벌린 사람의 형상을 하고 빛은 희망과 긍정을 상징한다고 한다.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과 남한 피아니스트 엄은경을 초대해 음악적 대화를 나누며 하나의 곡을 완성한 작품으로 대화와 악보, 영상 작품이 함께 전시되었다.
시와 함께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깊은 울림이 있었고 남과 북의 연결, 통일에 대한 염원들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오랜만에 윤동주 시집을 꺼내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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