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나 사이 초원
<옮겨가는 초원>
문태준
그대와 나 사이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그대는 그대의 양 떼를 치고, 나는 나의 야크를 치고 살았으면 한다
살아가는 것이 양 떼와 야크를 치느라 옮겨 다니는 허름한 천막임을 알겠으나
그대는 그대의 양 떼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고
나는 나의 야크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자
오후 세시 지금 이곳을 지나가는 구름 그림자나 되어서
그대와 나도 구름 그림자 같은 천막이나 옮겨가며 살자
그대의 천막은 나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머에 있고
나의 천막은 그대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머에 두고 살자
서로가 초원 양편으로 멀찍멀찍이 물러나 외면할 듯이 살자
멀고 먼 그대의 천막에서 아스라이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면
나도 그때는 그대의 저녁을 마주 대하고 나의 저녁밥을 지을 것이니
그립고 그리운 날에 내가 그대를 부르고 부르더라도
막막한 초원에 천둥이 구르고 굴러
내가 그대를 길게 호명하는 목소리를 그대는 듣지 못하여도 좋다
그대와 나 사이 옮겨가는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문태준 시집 《먼 곳》, 창비(2012)
'그대와 나 사이 초원'은
곁에 있음에도 느껴지는 거리감에서 오는 그리움일까?
가깝고도 먼
가깝지만 멀게 느껴지는 마음일까?
초원 하나 사이에 두고 있는
그대와 나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는 마음일까?
부부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초원 하나가 있다.
서로의 천막을 지평선 너머에 두고
각자의 삶을 일구며 서로를 바라본다.
저녁연기로 대화하듯
문 틈 사이 새어 나오는 불빛과
움직임의 소리로 대화하며
각자의 삶을 일구며 살아간다.
내가 길게 불러도
못 들을 만큼이나 넓은 초원 저 건너
그 초원을 가로질러
그대를 찾아가 두드리고 싶은 마음
주체할 수 없지만
'서로가 초원 양편으로
멀찍멀찍이 물러나 외면할 듯이 살자'
쓸쓸함이 묻어나지만
구름 그림자되어
서로의 삶을 다정한 마음으로 바라봐주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사랑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