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생각
가끔 생각한다. '인간' 혹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엔드리스(endless)적인 질문이나 존재의 심연과 같은 차원이 아니라(감당할 수도 없다) 단순하게 인간 혹은 나의 '하드웨어(몸)'와 '소프트웨어(정신)'에 대해.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하드웨어를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이 신의 장난이든 유전자의 우연한 조합에 의한 것이든 태어날 때 주어진 하드웨어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 (어쩐지 나로서는 여기서 굉장히 불평불만을 하고 싶어 진다.)
개인의 노력으로 어느 수준까지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가능하다. 또 소프트웨어는 각자가 어느 정도 선택을 할 수 있다. 가령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할 것인지 분자 생물학을 전공할 것인지는 그가 자신의 하드웨어에 어떤 프로그램을 인스톨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노력을 통해 2G 램의 두뇌 처리 속도를 4G 정도로 향상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인간의 소프트웨어는 기계의 그것과 다르게 쓰면 쓸수록 향상되는 유기체적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드웨어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어쩔 수 없다. 운명이라고 해도 좋고 막연하게 그냥 운이라고 해도 좋다. 그냥 태어나고 봤더니 매년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으로 사물함이 그득 한 인생이 있고, 반면 TV의 개그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외모를 희화화 해서 웃음을 주는 삶도 있다. 전자의 삶과 후자의 삶 중에서 어떤 것이 더 행복한 삶인가에 대해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확실히 하드웨어가 훌륭한 편이 인생을 사는데 더 '편리'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여기서 한 가지 경구를 인용(고등학교 친구S의 미니 홈피에서 퍼옴)할 수 있을 것 같다.
'Life is fair, cuz it's unfair to everyone' 즉, 삶이란 공평한데 왜냐하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육체를 부여 받음과 동시에 불공평한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불공평이라는 속성은 결국 우리 인생 자체에 내재된 속성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삶의 태도를 정하는 것.
여기에 인용하기에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톨스토이의 소설 한 구절을 더 인용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이걸 응용하면 훌륭한 하드웨어는 모두 엇비슷하고, 그렇지 않은 하드웨어는 제각각이다.
이런 생각을 한 이유란 조금 전에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봤기 때문이다.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이 굉장히 예뻤다. 한데 너무 낯이 익어서 도대체 어디서 봤나 영화가 진행되는 1시간 40분 동안 내내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에 찾은 답이 '그냥 전에 봤던 예쁜 여자애 중 하나랑 닮았잖아'였다. 진연희라는 대만의 배우였는데 손예진에서 '섹시 포인트 -3점' 하고 '순수 포인트+1점'이랑 '큐트 포인트+2점'하면 나올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래서 결국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이 "예쁜 애들은 다 비슷하네" → "예쁜 애들 인생은 좀 더 재미있으려나" → "뭐 하드웨어는 선택사항이 아니잖아" → "쳇, 이거 어쩐지 불공평하잖아" →"인생이 원래 불공평한 거야" → "뭐 어쩔 수 없지. 지금 가지고 있는 하드웨어라도 잘 관리하고 적절하게 써먹는 수밖에" 뭐 대충 이런 식으로 의식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