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인생
어렸을 때 내가 많이 아프면 엄마는 마치 자기가 아픈 것 마냥 걱정해줬다. '나 말고 엄마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그 말에 거짓은 1도 없어 보였다. 실제로 엄마가 아픈 것은 아닐까 되려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어린 맘에 내 몸이 너무 아프면, 정말로도 엄마가 내 아픔을 반절만 가져가서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기적이라기보단 그냥 엄마는 기꺼이 그렇게 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때때로 엄마가 앓아누울 때가 있었다. 내가 아플 땐 칭얼칭얼 댈 수 있을 만큼에 불과하지만, 엄마가 앓아누우면 그건 정말로 아픈 거였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끙끙 거리는 신음도 답답하게 가끔 터져 나올 뿐이었다. 어린 맘에 저러다 엄마가 죽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들 정도였다. 그럼 나는 엄마의 아픔을 절반이나 나눠가지면 내가 많이 아플 테니까, 우리 가족이 4분의 1씩 나눠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가능하다면 '드래곤볼'에 나오는 것처럼 엄마의 아픔을 이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눠 가질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했다. '원기옥'의 역발상인 셈이다. (손오공의 필살기 중에 '원기옥'이란 것이 있는데 전 지구의 모든 생명에게 아주 조금씩 에너지를 받아서 엄청난 장풍을 쏘는 기술이다.)
그러니까 나 혼자 감당하기 힘든 아픔이나 고통을 세상 사람들이 나눠 가지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다음 날에 다른 사람이 크게 아프면, 나를 포함한 전 지구의 사람들이 조금씩 대신 아파해주면 되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었다.
오늘 카카오톡의 연락처 목록을 봤다. 1727. 중복 연락처도 있겠지만 대략 1700명의 번호가 저장돼 있었다.
목록을 쭉 넘겨 나갔다. 그러다 여자 사진이 나오면 클릭을 하고 확대해 보고, 남자가 나오면 다시 빠르게 넘겼다. 한 20분 그 짓을 반복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까 갑자기 문득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가에게든 지금 내 기분을 말하고 싶은데 그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런 기분이야 이제는 익숙할 데로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지만 오늘은 뭔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 이상한 기분을 1727명과 똑같이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딱 한 명정도와만 반으로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어느덧 32살이나 먹어버려서 이럴 때 '엄마가 보고 싶단' 생각은 1도 들지 않는다.
부서를 옮기면서 10월 20일 현재 약 300명이 늘어난 2065명이 저장돼 있다. 전보다 외로움을 나눠 가질 사람 300명이 늘었지만 내가 느끼는 외로움의 크기는 변동이 없다. 사람을 만나는 게 '일'이라면 일인데 나는 일을 하기는 하는데 잘 하지는 못하는 거 같다.
최근 읽은 김훈의 수필집에는 "나는 손의 힘으로 살아야 할 터인데, 손은 자꾸만 남의 손을 잡으려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