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자주 듣는 말

찌질한 인생

by 거짓말의 거짓말

사람마다 살면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가령 "처음엔 차가워 보여서 다가가기 힘들었어"라거나 "원래 그렇게 무뚝뚝한 편이야? 재미없게..." 혹은 "언제나 멍청하게 웃고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의외로 영악한 구석이 있네" 등등.


그 이유가 외모 때문이든 성격 때문이든 같은 말을 다른 사람에게 누누이 들어왔다면 당사자가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어느 정도 그 사람의 '본질'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살면서 자주 들어온 말이 몇 있다. 술을 마시거나 개인적인 친목으로 만나는 자리에서 종종 "어라, 어쩐지 옛날보다 덜 웃긴데."라는 뉘앙스의 말을 듣게 된다. 이런 말을 듣으면 우선 '왜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언제나 덜 웃긴 걸까'라는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이어서 '왜 내가 너네들을 웃겨야만 하는 거지!'라는 반발심도 든다.


그래도 기왕이면 '안 웃긴 놈'보다는 '웃긴 놈'이 되는 편이 (이유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내쪽에서도 더 좋으니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이렇다.


그것은 일종의 '심리적인 기억의 메커니즘' 때문이다. 즉 과거에 내가 했던 재미있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지만 재미없는 이야기는 바로 상대의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이다.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들 수 있다.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 나는 내가 다니는 학교에 굉장히 미인이 많다고 생각했다. 남중 남고를 졸업한 심리적인 부분을 제거하더라도 어쩐지 학교에 일반적인 수학의 비율을 넘어서는 정도로 많은 미인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학교에는 정말 예쁜 애들이 많이 다니고 있다고!"라고 과거의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미인이 학교에 많다는 것이 나와는 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학교에서 강의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듣으면 적어도 하루에 100명 이상의 여대생들을 보게 된다. 그럼 일반적으로 그중 5명 정도는 지나가다 돌아보게 될 정도의 미인이다. 하루 정도면 상관없지만 그런 식으로 열흘이 지나면 나는 총 50여 명의 미인을 보게 된다. 그럼 내 멍청한 머리는 950명의 평범한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그 50명만 기억하게 된다. 그럼 그쯤에서 '와, 미인이 정말 많군!'하고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집단이나 그렇듯 그 정도면 일반적인 비율이다.


마찬가지로 내 '개그감'도 그렇다. 컨디션에 따라 그날그날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자주 듣는 말은 "자심 감을 가져", 혹은 "추진력 있게 행동해봐"하는 조언 혹은 충고류의 말이다.


뭐 일반적인 삶에 대한 것은 아니고 대체로 '남녀 관계'에 관한 부분(여자는 남자가 적극적으로 다가오면 보통은 흔들리게 돼있다니까)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말하는 걸 보고는 굉장히 경험이 많은 줄 알았어(요)."하고 말하기도 하지만 오해다.


관계라는 것이 보고 싶을 때 '만나자'고 연락하고 상대가 '왜?'하고 물으면 '그냥'이라고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혹은 나와 상대가 서로의 생각과 느낌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런 관계를 맺어본 기억이 없다.


가면을 벗고 맨 얼굴이 돼 본 적이 별로 없다.


최근 들은 철학자 강신주의 팟캐스트에서 자신을 대단하다고 떠벌리는 사람은 사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이고, 자신을 쓰레기라고 낮추는 사람은 한 번쯤 돌아볼만한 사람이라고 들은 게 기억이 난다. (뭐,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같은 말(쓰레기라는 자학)이 반복되면 사실 듣는 사람도 지겨워진다.)


세 번째로 자주 듣는 말은 "네 주변의 것들에 '정말로' 관심을 갖아라"라는 조금은 아픈 충고였다. 첫 번째 말은 2차 성징이 시작될 무렵부터, 두 번째 말은 성인이 되고부터 많이 듣게 됐다면 이 말은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자주 듣게 됐다. 요는 주변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내 관심사 밖의 무엇인가에 도 조금 더 애정을 가지라는 말이었다.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4~5명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하나둘씩 취업을 하고 자리가 잡혀갈 무렵이었다. 새벽 두 세시쯤 학교의 본관 앞 계단에서 3차인지 4차인지를 하며 캔 맥주와 과자를 안주 삼아 여자 얘기를 하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상대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씩 해주기로 하자!"라고 제안했다.


그때 내가 들은 말은


너는 언제나 듣고 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듣고 있지 않아

라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서 "너는 주변 사람을 '풍경'으로 인지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비슷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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