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편돌이를 그만둔 이유

웃기고 더럽고 슬프게 찌질한 이야기

by 거짓말의 거짓말

좀 전에 헬스장 샤워실에서 스무 살 때 내가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던 편의점의 사장님을 만났다. 물론 서로 벌거벗은 상태였다. 나는 패션 센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기 때문에 옷을 입고 있을 때보단 그 반대일 때 더 자신감이 넘치는 타입으로... 는 농담이고 어쨌든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2004년 당시 대학 새내기였던 내게 동네 아저씨였던 그 사장님은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제안하셨다.


"주말 야간에만 일해보지 않을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정기적인 용돈 같은 것은 받아본 적이 없었고 필요할 때 가끔 돈을 타다 쓰는 정도였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물욕도 식탐도 별로 없는 편이라 매주 나오는 아이큐점프(1500원)를 한 달에 한두 번 사는 정도였다. 학원이라고는 코 찌질이 시절 다녔던 태권도 학원 몇 달이랑 충남 서산에서 부천으로 전학을 오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6학년 1학기 때까지 3년 속셈 학원을 다닌 게 전부였다.


'스무 살이 됐으니 나는 이제 어른이다'라는 알량한 자의식이 생겼고' 이제부터 내 용돈은 내가 번다'는 마음도 있었기에 나는 사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2004년 당시 법정 최저 임금은 약 3000원(2840원)이었다.


일주일 중 나는 금요일과 토요일 밤 11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총 이틀을 일했다. 야간의 경우 내 기억이 맞다면 주간 시급의 1.5배를 줘야 하지만 사장님은 주간 알바에게는 2300원, 야간 알바에게는 2800원을 지급했다. 그리고 1시간당 200원씩 계산해서 야간 근무 9시간 동안 총 1800원어치의 편의점 물건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식대를 대신하도록 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엄연히 불법이다.


당시 학교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최저 임금 교육을 하며 법정 최저 임금 미만일 경우 꼭 신고해야 한다는 교육도 받은 나였지만 굳이 신고는 안 했다. 그렇게 나는 야간 편의점 알바를 1년 반 정도 꾸준히 했다. 일주일에 이틀을 일하면 한 달 월급이 보통 22만 원에서 25만 원 정도 나왔던 것 같다. 그 돈으로 나는 지하철 정액권도 사고, 학생 식당에서 밥도 먹고, 2학년이 되고 나서는 후배 여자애들에게 밥도 사주고, 후배 여자애들에게 아이스베리 빙수도 사주고, 후배 여자애들에게 민들레영토 차도 사주고....


아무튼 그렇게 성실하고 바르게 대학생활을 하던 나였지만 나는 어떤 '큰 사건'을 계기로 편의점을 그만두게 된다.


35살이 된 지금에 나를 돌아보면 어쩐지 나는 표준 편차 곡선의 보통 구간에서 조금 혹은 얼마간 벗어난 여자애들에게 주로 매력을 느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남자애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부류보다는 호불호가 갈리는 쪽의 여자애들에게 끌리는 경향이 강했다.


예를 들어 좋아하고 봤더니 부모님 중에 한 명이 없었다거나,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속을 파보면 마음 저 깊은 곳에 커다란 구멍이 있어서 어둠이 스멀스멀거린다거나, 얼굴이 예뻐서 인기가 많을 것 같지만 의외로 적도 많아서 주변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는다거나, 병원에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런 이유로 몸이 약해져서 입원을 한다거나 뭐 그런 식이었다.


지금에 와서 봐도 그중 몇몇은 확실히 일반적인 보통의 삶과 조금 거리가 있는 영역에서 살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들에게 실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령...', 이라는 말로 단서를 제공할 순 없다.


어쨌든 나는 지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중이니까 다시 돌아와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21살이던 2005년에도 나는 아마 그런 표준편차를 벗어난 예쁜 여자애 하나를 혼자 좋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그 여자애를 포함해서 선배 등 몇몇과 어떤 행사의 뒤풀이를 하는 날이었다. 아마 토요일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날 생전 처음으로 건대입구역에 갔다. 술자리는 오후 8시쯤부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남자 선배에게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가 있다고 했더니 선배는 "그럼 너는 빨리 먹고 빨리 취하고 빨리 가"라고 했다.


지금도 바보지만 스물한 살 무렵에는 바보력이 계왕권 100배 정도로 더 바보였기 때문에 누가 좋아도 혼자 끙끙 알기만 하고 별다른 행동을 하지 못했다. 내 앞에 좋아하는 애가 있는데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나는 멍청하게 안주도 안 먹고 술만 들입다 먹었다. 편의점 알바 시간은 다가오는데 떠나기는 싫고 술은 계속 들어가고 하다 보니 태어나서 가장 많이 취했었던 것 같다. 출발을 미루다 보니 시간은 흘러 밤 11시 알바에도 맞춰가기 힘든 상황이 돼버렸다. 나는 문자를 보내 내 이전 타임 근무자 여자애에게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술집을 나왔는데 찬 공기에 술이 확 올라오면서 갑자기 눈의 초점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돈다는 느낌을 그때 처음 말이 아니라 실제로 체감했다. 비틀비틀거리면서 어찌어찌 2호선 건대입구역에서 신도림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신도림 역에 내려서 1호선 지하철로 환승을 해야 하는데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LED 전광판의 글씨가 안 보였다. 눈에 초점이 없어서 형태가 뭉개져 보였다. 역사 안을 헤매다 보니 1호선을 탄다는 게 신도림 역 밖으로 나와 버렸다. 다시 표를 끊고 신도림역에 들어갔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1호선 인천행을 다시 탔다. 1년 넘게 통학은 1호선만 타고 다녔기 때문에 환승이라는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부천까지 갈 수 있는 인천행 막차를 탔고 이미 아르바이트 시간에는 30분 이상 늦어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신도림역 지하철을 타는 순간부터 미친 듯이 오바이트를 할 것 같았다. 진짜로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다양한 상황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해봤다.


문이 열리기 직전 입안에 토를 머금고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재빠르게 뛰어가서 휴지통에 토를 하고 다시 지하철을 탈까. 문이 열리면 지하철 칸과 탑승구역 틈 사이의 아래로 토를 해버릴까.


토를 하기 위해 지금 열차를 보내버리면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데 택시비도 없었고, 이미 아르바이트 시간도 늦을 데로 늦어서 독촉 전화가 오고 있었다. 부천에 도착할 때까지 토를 참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문이 열리고 찬 바람이 들어오면 잠깐 괜찮은 듯싶다가도 다시 문이 닫히면 다음 역으로 이동하는 3분이 3년처럼 지옥같이 길었다.


부천까지 3 정거장 정도를 앞둔 온수역이었다. 앞선 두 가지 선택항 중 고민하는 사이 지하철 문이 닫혀버렸다. 지하철 문이 닫히자마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걸 스스로가 알 정도였다. 나는 지하철 칸과 칸 사이에 있는 틈새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가 내 가방을 열고 가방 안에 토를 했다.


우웩 우웩 우웨에엑.


그 틈새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나는 3 정거장이 지날 동안 지하철 틈새의 양쪽 문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부천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나는 미친 듯이 뛰어서 편의점에 도착했다.


편의점에 도착하니 편의점 앞에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주차돼 있었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고 내 앞 타임에 근무하는 여자애를 태우고 가기 위해 그 아이의 부모님이 와 계신 거였다. 나는 앞 타임의 여자애와 그 부모님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자정부터 편의점을 보기 시작했는데 근처 룸살롱과 유흥업소 웨이터가 양주와 담배 등을 사가는 새벽 1~2시가 지나고 나서부터는 미친 듯이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일한 곳은 꽤 큰 규모의 편의점으로 원래는 야간이든 주간이든 아르바이트생 2명을 썼었지만 나는 배테랑 이기도 했고 구두쇠인 사장님은 어느 순간부터 야간과 주간 알바 1명만 썼다. 그래서 매장 안에 있는 화장실에 갈 때는 편의점 문을 걸어 잠그고 '잠시 외출 중' 안내를 걸어두곤 했다.


졸리기도 하고 배변 욕구도 있어서 나는 편의점 문을 잠그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대로 대변기 위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5분 정도 잤을까. 퍼뜩 정신이 들었다. 화장실을 나오고 편의점 문을 열려는데 편의점 문 밖에 삼각김밥과 즉석식품 박스가 놓여 있었다. 새벽 5시쯤 신문을 배달하는 아저씨가 편의점 문을 두들기며 내게 문 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미 3~4시간이 흘러 있었다. 그 말인즉 똥을 누다 잠이 든 나는 대변기 위에서 4시간 풀 취침을 때린 것이었다. 졸면서 아침까지 버티던 나는 8시가 돼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다음 근무자가 왔고 나는 토를 한 가방을 그대로 들고 집에 와서 바로 쓰러졌다.


오후 늦게 눈을 뜨니 사장님한테 부재중 전화 몇 통이 와 있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매출 전표를 보던 사장이 새벽에 3~4시간 동안 매출이 0인 것을 보고 cctv를 돌려 본 뒤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나는 솔직히 똥을 누다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다고 했다. 꾸중을 좀 듣긴 했지만 평소에 일처리가 워낙 깔끔한 나였기 때문에 그럭저럭 조용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몇 주가 흐르고 월급날이 되자 그 사장님은 20만 원 초반에 불과한 내 월급 중에서 그날의 실수를 빌미로 10만 원을 빼고 줬다. 나는 일단 그 날은 군말 없이 월급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군대를 핑계로 편의점 알바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좀 더 할 수 없겠냐고 물었지만 한 번 정하면 뒤도 안 돌아보는 나는 그렇게 내 1년 6개월여에 걸친 편의점 아르바이트 인생에 종점을 찍었다.


아, 그리고 당시의 여자애는 수년 전에 외국인 남자와 결혼해서 외국에서 산다는 소식을 들었다. 역시나 평범하진 않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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