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상상
서른 즈음이 되면서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30년이란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사랑을 준 적도 받은 적도 없는 자신에 대해.
부적응자나 문제아까지는 아니었지만 주변에서는 나를 조금은 유별난 녀석 취급하는 것 같았다. 헤픈 웃음과 멍청한 얼굴로 평범을 주장해도 내 연기는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다리 사이에서 덜렁거리는 그것에 한 가지 기능이 추가될 무렵부터 가끔 주변에 있는 다른 덜렁이들로부터 "야, 나중에 너 여자 사귀게 되면 꼭 좀 보여주라."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덜렁이들은 장동건과 서태지가 만나는 여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내 미래의 여자 친구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리고 나는 남녀를 불문하고 "나중에 여자 친구 생기면 꼭 좀 소개해줘"라는 말을 그 후로도 10년 이상 꾸준히 들었다. 개중에는 나쁘지는 않지만 여자 친구로서는 뭔가 아쉽거나 잠재적인 여자 친구 후보도 몇 있었다. 그리고 세상 누구보다 내 여자 친구가 될 사람에 대해 가장 궁금한 건 바로 나였다.
짚신도 짝이 있다, 라거나 혹은 언젠가는 너를 알아봐 줄 사람이 꼭 나타날 거야, 라는 류의 말도 자주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짚신도의 '도'때문에 배알이 꼴렸다. 내가 나이키 에어맥스 운동화가 아니라 설령 짚신일지라도 나는 짚신을 만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패배자의 변명의 일부가 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점심 도시락에 하나 남은 비엔나소시지도 양보하고, 이효리가 사는 47층짜리 펜트하우스도 안 부럽고, 서울대 간판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지만 여자만큼은 내가 원하는 걸*로 갖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이제 서른. 지금과 같은 상태면 내가 정말 갖고 싶은 여자가 나타났을 때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 냉정히 생각해보지 않아도 수많은 덜렁이들과의 경쟁에서 짚신에 새총으로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 워커를 신고 M16 소총이나 M203 유탄발사기로 무장한 적들을 이길 순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아더에게 '엑스칼리버'가 있었던 것처럼 내게도 '전설의 덜렁이'가 있었지만 바위에 박혀 쓰지 못하면 없으니만 못했다. 남자가 칼을 들면 두부라도 썰어야 할 텐데 정작 썰어야 할 두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덜렁이를 빼고는 돈도, 차도, 키도 불리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더 나은 내가 돼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내게도 '경험'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했다. 여자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해줘야 행복해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기 위해 데이터의 축적이 필요했다.
눈앞에 완벽한 상대가 나타났을 때 내가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놓친다면 그것만큼 멍청한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험이 없다는 사실보다 더 초조했던 것은 나라는 인간에게는 무언가가 빠져 있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감정의 결핍. 나는 살면서 보통 사람이 느끼는 커다란 감정의 소모나 동요를 겪는 일이 드물었다. 이성을 잃을 만큼 화가 나거나, 기쁘거나, 행복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바닥까지 갔을 때 어떤 내가 나올지 나도 궁금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외부로 보이는 나의 감정과 감성은 사실 그렇게 보여지도록 짜여진 것, 이성의 영역이었다. 즉 진짜가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근본적으로 어느 누구와도 감정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스멀거렸다. 그런 두려움이 커지자 도피처가 필요했다. 도피처는 나중에 있을 진짜 사랑을 위한 연습으로 포장했다.
A와는 데이트를 하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손도 잡고 했지만 딱 거기 까지였다. 어쩌면 나는 A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연애라는 역할극에 맞춰 움직여줄 상대가 필요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감정에도 연기에도 서투른 나는 배려심까지 별로 없었다. 한 마디로 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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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화자의 어감상 일부러 '사람'대신 '걸'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