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toZ

K의 실없는 꿈 이야기

누군가에게 반했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by 거짓말의 거짓말

“얼마 전 꿈에 보아가 나왔어.”


친구 K가 말했다. 그래서,라고 내가 묻자 녀석이 부연했다.


“그러니까 같이 자거나 한 건 아니고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에서처럼 기막히게 멋진 데이트를 했거든. 근데 깨고 나서 보아를 보니까 이상하게 보아가 진짜 좋아지더라고.”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자신이 현재 누군가에게 반해있는지 아닌지조차 잘 알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반하는 일은 이성과 감성의 영역이며 동시에 의식과 무의식에 걸쳐서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하게 이성적인 판단만으로 누군가에게 반했다, 아니다, 를 나누기는 굉장히 어렵다.


결국 친구 K의 꿈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녀석의 무의식은 전부터 보아에게 반해 있었고 꿈을 통해 녀석이 단순하게 그 사실을 깨달았다. 혹은 K는 우연한 계기로 녀석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꿈을 통해 보아를 보게 됐고 그 후에 보아를 좋아한다고 사후적으로 믿게 됐다.


사람들은 애매모호한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 관한 것일 때에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지속시켜나가며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구름과 달과 별에서 그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면 반한 것일까? 그 사람이 내 눈 앞에서 다른 이성에게 짓고 있는 미소를 보고 알 수 없는 싫은 감정이 솟구친다면 반한 것일까?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반했는지 아닌지를 테스트해 볼 수 있겠지만 내가 아는 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시간과 공간 법’이다.


우리는 언제나 마음에 든 상대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갖게 된다. 과연 지금 그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누구를 만나고 있을까. 그 사람은 어제 점심에 무엇을 먹었고 이번 주말에는 누구와 약속이 있을까. 상대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심은 결국 그와 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희망으로 귀결된다. 상대를 내 자신의 시공간으로 끌어오거나 내가 상대의 시공간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과거 K의 전 여자 친구가 내게 물었다.


“K의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그녀는 당시 K와 지금의 시공간을 공유했지만 K가 보내버린 과거의 시간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그녀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K의 과거 시공간에 질투를 했던 것이다.


어떤 소설 속에 나온 여자는 그녀의 남자 친구와 만난 지 2년 6개월이 지났을 때 마음속으로 ‘이겼다’를 외쳤다고 한다. 그녀는 그녀의 남자 친구가 전 여자 친구와 2년 5개월을 사귀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반대로 만약 지금 누군가에게 반해있거나 사랑에 빠져 있을 때 그 마음이 식었는지 알아보는 방법도 간단하다. 그 사람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을 때, 우리는 조용히 이별을 준비하게 된다.


(20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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