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toZ

위대한 사랑의 일상적 결말

읽다: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 by 은희경

by 거짓말의 거짓말

사랑에서 가장 멋진 순간은 언제일까. 나는 영화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의 해리처럼 비관주의자는 아니다. 책을 읽을 때 마지막 장을 가장 먼저 읽지도 않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밤을 지세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에서 가장 멋진 순간은 그것이 시작하기 직전까지의 순간, 즉 다시 말해 둘의 사랑을 어떤 관계의 틀로 규정하기 전까지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말로써 둘의 관계가 연인관계 혹은 불륜관계(아마도 이 경우는 양자 모두 자신들의 관계를 명랑하게 불륜관계라고 칭하지는 않겠지만)따위로 정해지고, 거기에서 둘 사이에 놓여있던 어떤 모호함과 불확실성이 사라지게 되면 거기서부터 사랑이라는 것은 권태와 이별을 향한 현실적인 긴 여정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물론 관계의 초기에는 호르몬과, 상대방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부풀려진 환상이 ‘사랑’이라는 말이 모든 사람에게 갖게 하는 환상, 즉 자신들의 사랑은 사랑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특별하고 위대한 사랑 이상의 어떤 것이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얼마나 헛된 기대였는지 깨닫게 된다.


아직 상대방에 대한 무지의 상태일 때 상대방은 사랑의 대상으로 이상적이다. 우리는 사랑에 빠진 상대를 이상화한다. 특히 상대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의 모든 매력은 과장되어지는데 어느 순간 그(녀)는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가서 천사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상대에 대해 오래 희망을 품을수록, 상대는 더 고귀해지고, 완벽해지고, 희망을 품을 만한 가치를 갖게 된다. 천사가 얼핏 얼핏 보여주는 미소는 세상의 어떤 것보다 짜릿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어느 순간 천사가 내 간절한 바람에 응해 날개를 접고 내려와 한 명의 인간이 되는 순간 현실의 비극은 시작된다. 정작 상대가 나를 사랑하게 되면 그(녀)의 매력은 순식간에 바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묻게 된다. “이 사람이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위대하고 특별했던 사랑, 그래서 마치 지상의 사랑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사람으로 느껴졌던 상대방을 이제 내가 만났던 많은 연인, 혹은 내가 앞으로 만나게 될 그렇고 그런 모든 다른 연인들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사랑의 지속을 원하는 연인에게는 절대로 내 사랑으로 꽉 채워진 이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자신이 상상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 묻지 말아야 한다. 물론 연애의 초기 사랑에 빠져서(Fall in Love) 행복의 물장구를 치고 있을 때는 이런 의심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제 저녁이 다가오고 있고, 슬슬 배도 고파오고, 피곤하기까지 하다. 예전 같으면 연인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처리해야 될 업무로 날을 새는 한이 있어도 해가 떨어진 강변에 앉아서 석양을 바라봤겠지만 이제는 그럴 만큼의 에너지도 사랑도 없다. 집에 돌아와서 처리해야 될 업무를 처리하고,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는데 가장 먼저 연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게 되면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 혹은 내가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지? 나는 정말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작은 의심들은 점점 더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가령 그전까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약속시간에 10분 정도 지각하는 연인의 행동, 데이트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 혹은 그전까지는 나와 달라서 매력적으로 보였던 연인의 세심한 성격마저도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이 타인을 100%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방을 100%로 이해하고 아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특별하고 위대한 상대방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만에 하나 상대방을 100% 아는 일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에 대해 100% 알고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은 상대방을 전혀 알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방을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100% 알고 있는 상대방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매력도 느끼지 못할 것이며, 상대는 답이 정해진 방정식이나 함수의 공식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우리는 지구의 반대편에서 내가 해를 볼 때 달을 보고 살고,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미지의(0% 알고 있는) 상대방에 대해 더 매력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다행은 것은 상대방은 물론 나 자신에 대해서도 100% 안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서 100% 아는 일이 가능하다고 하면 그들 중 다수는 권총의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어두운 부분이나 상처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사랑할 때 우리가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느끼는 것은, 단지 우리가 상대방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달을 것이다. 내가 하는 말, 내 느낌, 내 생각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상대방이 사실은 전혀 다른 언어로 내 말을 받아들이고 있었단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사랑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착각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그리고 시간은 사랑에 빠진 연인의 그런 착각을 깨는데 언제나 성공한다. 문제는 시간의 길이일 뿐이다.


나의 연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운이 닿지 않아 우리가 알 기회도 얻지 못했던 사람과 마주치면 우리는 낭만적인 노스탤지어에 젖는다. 현재와는 다른 사랑의 삶의 가능성과 마주치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은 가능한 수많은 삶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둘만의 완벽했던 하나의 세상에 금이 가는 순간이다. 아담과 이브의 낙원에서 둘은 행복했다. 하지만 선악과를 따먹고 인식을 얻게 된 그 둘은 그 둘이 사는 동산 말고도 수많은 동산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는 자신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one and only 였던 상대방은 이제 one of the many일 뿐이다. 그리고 이제 상대방이 세 번째 이든 네 번째 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외로움을 달래줄 누군가(anyone)가 필요한 것이지 바로 그 사람(you)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는 일은 어쩌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 앞서 일어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랑하고 싶은 요구가 해결책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일단 답을 알아버린 문제는 더 이상 호기심을 자극하지도 흥미롭지도 않다. 게츠비의 사랑이 위대한 것은 그의 사랑이 영원히 풀지 못한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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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교양으로 들었던 한 문학 수업의 과제. 은희경의 단편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 '나의 세 번째 연인'을 읽고, 이보다 앞서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책 '우리는 사랑일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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