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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시] 그대에게 43_부부와 밥상

by 김작자




그대에게 43_김경민



김치찜을 하고 혹시나 몰라 미역국을 끓입니다

냉동실에 있던 반건조 민어를 해동시킵니다

초록 채소와 흰 채소, 나물을 준비합니다

육류가 빠진 듯 하지만 김치찜과 짝을 이뤘고,

오븐은 방울양배추와 아스파라거스를 굽습니다

이만하면 근사한 한 끼 식사로 나쁘지 않습니다

위 메뉴는 일주일 만에 만나는 남편의 것입니다

반찬의 가지 수와 번잡한 만큼이나,

갖가지 ‘정념’이 추가 양념으로 배여 있습니다


매일 헤어질 결심을 하면서도 매일 상을 차립니다

아이들을 핑계로 산다하지만 심상心想은 압니다

저만큼 오래 거둬온 친구를 버리기에는,

두 사람 모두 손해 보는 장사라는 것을 말입니다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늘 이별을 다짐하지만

솔직히 이보다 더 잘 맞는 ‘손뼉’도 없습니다

단지 서로가 더는 존중(배려)하지 않다보니

불친절이란 죄명으로 소심한 보복 중인 것입니다


한때 세상에서 가장 멋졌던 한 남자(여자)는

잔소리로 아로새겨진 주름이 느는 동안,

머리카락은 검고 하얀 건반이 되었습니다

더는 조율 된 적 없는 그 남자와 그 여자의

‘피아노’는,

삐거덕거리는 신음과 불협화음만을 낼 뿐입니다

조금은 초라하고 처진 어깨의 저 아저씨(아줌마)는,

볼록 뛰어나온 뱃살과 거친 입의 저 아줌마(아저씨)는,

한 때 목숨보다 소중했던 나의 남자(여자)였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인정하고 나면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함께 늙어갈 벗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재산입니다


유치하지만 원수라 생각하면 원수가 되고,

은인(벗)이라 생각하면 은인(벗)이 됩니다

흔한 문장이지만 되뇌다보면 위력은 큽니다


따뜻한 밥 한 끼는 ‘사랑’입니다, 밥 한 끼는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목숨’입니다

하지만 요즘의 한 끼 밥은 너무 손쉽게 해결됩니다

부부관계는 어떤 철학적 사유를 가져다 되어도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밥’으로 점철됩니다

오늘도 원수(은인, 벗)같은 남편에게 외칩니다


“밥 먹어.”


이왕 차리는 밥상인데 말투라도 바꿔봐야겠습니다


+배달과 외식의 편리한 문화로 인해 밥을 짓는 횟수가 줄다보니, 가족 간의 정情도 찰진 밥알과 달리 건조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외식보다 집밥의 온기는 어떨까 조심스레 권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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