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69_김경민
하오의 햇살이 편린되어 바람에 흩날리면
그때서야 잠시 그대와의 추억을 들춰봅니다
그러나 어떠한 양해를 구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대와 나의 기억은 각자의 소유물로,
이제는 빛바랜 나만의 각색이기 때문입니다
문득 그대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온기가 필요한 계절이 왔기 때문입니다
쌀쌀해지는 날씨와 함께 여민 옷깃 사이로,
도심의 화려해질 불빛과 찾아드는 뭇 그리움.
겨울의 시작은 분주해지는 도심과는 달리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사계四季의 막바지로,
사위어가는 만물의 아쉬움이기에 더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여전히 그대가 그립다는 것은 아닙니다
주제를 정하고 나니,
‘그대’란 단어는 통상적으로 ‘그리움’과 상통하여
카페라떼처럼 보드라운 미끼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작가란 원래,
사기꾼 기질이 다분하다는 것을 강조해 봅니다(웃으시면 좋겠습니다.)
찾고 있던 책이 절판이면 중고서점을 애용합니다
그런데 오늘 뜻밖의 선물이 함께 도착했습니다
책 사이에 꽂힌 카드에 생일을 축하한다는 문구가
은박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봉투가 빨간 색으로,
마치 성탄절을 연상케 하는 조합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중고서점에서 나의 생일을 알 리는 만무합니다
책과 발송되는 이벤트격의 성질인 것 같습니다만
겨울에 태어난 나는 ‘뜻밖의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뜻밖에 맞이하는 사소한 것의 위력은 매우 큽니다
우리는 결코 내면의 고독을 나눌 수는 없습니다
오롯 혼자 짊어지고 가는, 닿을 수 없는 우주입니다
채우고 채워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의 외로움은
그렇기 때문에 채우고 채워주어야 하는 매개적 관계로,
공허함을 치유 받을 수 있는 자가 치료법이 많습니다
관계와 관계를 떠나 서로서로가 일면식은 없을지라도,
‘감사’의 뜻이 담긴 인사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온정(진심) 어린 인사는 이 겨울 동화童話,冬花가 됩니다
위로의 꽃(시선)이 각자의 가슴에서 피고 월동하는 동안,
적잖이 데워진 겨울은 충분히 동화同化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모두의 ‘봄’이 무사히 소환되면 좋겠습니다
‘베풂(먼저 다가감)’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채우’고 ‘치유’하는 목적이 더욱 크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만 실천하는 12월이면 좋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건강하세요.”
“덕분입니다.”
그 어떤 값진 외투보다 보온성이 강한 문장들입니다
나를 비롯하여 모두에게 보온이 필요한 계절입니다
이 겨울 모두의 내면의 밤에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서로서로 지켜가는 언어의 군불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리움엔 이유가 없다지만 그리움의 이유는,
따스(위로)한 말 한마디가 절실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