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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e Y Mar 12. 2021

닫힌 마음, 다친 마음

아이는 엄마의 거울이다

아이는 엄마의 거울이다


오은영 박사님이 말하길, '육아'의 궁극적 '목적'은 '독립'이라고 한다. 마음을 쿵 치는 말이다. 육아의 길로 들어가기 전에는 꿈도 못 꿀, 육아를 하면서도 잊고 사는 말이다. 어른이 된 나도 마음 독립하기가 어려운데 '독립한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9 - 6 회사도 다녀보고 8 - am 2 회사도 다녀보고 8.30 - 5 회사도 다녀보고 자수성가한 사장 밑에서도 있어보고 물려받은 사장 밑에서도 있어보고 외국 돈으로 월급 주는 무늬 사장 밑에서도 있어보고, 월화수목금금금 사업도 해봤다. 그렇다고 인생 모든 경우의 수를 경험해본 건 아니지만 그 중 가장 힘든 건 육아다. 육아의 목적을 되새겨보면 정말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아이는 순한데-."

아니, 아이에 대한 말이 아니다. 아이의 성향이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이 육아가 힘든 이유는 아이를 통해 나를 마주하기 때문이다. 육아는 그동안 외면해왔던 혹은 그동안 크게 관심 갖고 살피지 않았던 내 자신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는 과정이다. 아마 주말이나 저녁 퇴근 후에 집중적으로 보는 워킹맘, 워킹대디는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물론 학부모가 돼 전업 육아를 할 시간이 생긴다든가 아이가 성인이 되는 시기든간에 그때 온전한 나를 볼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될 수 있다.


온전한 나를 보는 경험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누구나 상처를 품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고 없다하더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처 자국을 어느 순간 발견할 수 있다. 전업 육아 시기에 내 안으로 깊게 들어가게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번째, '육아의 정답'이라는 표준 백과가 없다. 두번째, 아이의 행동이나 기질의 원인은 모두 부모에게서 온다. 


뭐든 틀에 맞게 생활하면 대학이라는 탈출구를 만나는 시기에는 정답을 모를 땐 표준 백과를 찾으면 됐다. 그 보다 군더더기없이 정리된 정답을 찾으려면 정석을 펼치면 됐고. 조리원에서 아이가 집에 딱 오면 "아가야, 왜 그래."라는 말을 아주 많이 하게 된다. 분유를 왜 안먹지, 똥은 왜 안싸지, 황금똥이 아닌데 괜찮나, 트름은 왜 안할까, 왜 우는 걸까, 뭐가 불편한 거지.서부터 아기 때부터 수면 교육을 한다던데, 안아주면 손탄다던데, 외국은 따로 잔다든데, 분유는 텀을 맞춰야 습관이 된다던데, 쪽쪽이 하면 구강구조가 변한다던데, '하던데'라는 의문에 정답을 찾기가 너무 너무 너무 어렵다. 게다가 핏줄 섞인 할머니는 물론 동네에 얼굴 모를 할머니들의 잔소리가 더해지면 엄마의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해진다. 신생아 시기의 이 과정을 거쳐 깨닫게 되는 건 결국 "정답은 엄마"라는 진리다. 여기서부터 또 미궁으로 빠진다.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의 어린시절, 나의 성장과정, 나의 기질과 성격을 돌아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아이의 행동이나 기질이 내 마음 한 구석 움츠려있던 나를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 또한 성인이 된 나처럼 '진짜 나(본모습)'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기에 잠시 보는 사람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걱정할만 한게 아니다. 부모에게 본보습을 보이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가정에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육아의 방법론을 찾기 이전에 '진짜 나'를 만나고 다스리고 위로하고 공감해 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 마음 한 켠에 쪼그라앉은 꼬마에게 말 걸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비로소 내 앞에 있는 아이에게 확신과 공감을 주고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건 정말 x 1000000 어려운 일이다.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아날로그 메모를 정말 많이 했다. 그도 그럴만한 게 PR을 하면서 기자의 성향 하나하나 심지어는 가족 관계, 아이의 나이까지 기록해놔야 대화가 술술 풀렸다. 업무 이외에도 개인 감정, 스케치를 해놓으면 마음의 나무가 풍성하게 자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SNS가 활발해지면서 더이상 의미가 없이 느껴졌다. 글을 쓰는 걸 중단한 이후부터 행복이 하나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내 글은 어두워졌고 좋은 점만 부각해 쓰다보면 그건 가짜 같아 보였다.


아이를 본다, 글을 쓴다
모두 나를 마주하는 일


남편에게 물었더니 글을 쓰는 건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고 어떤 측면에서 평가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의한다. 그게 내 자신이 되었든 누군가를 평가하는 때 우리는 좋은 면보다는 단점을 먼저 보려고 한다. 육아로 돌아오면, 육아는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고 동시에 자신을 평가하는 일이다. 마치 수행자의 삶처럼 느껴진다. 항상 내가 옳고 틀리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그리고 행동하는 언행일치 엄마에게는 육아 또한 단순하고 어렵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이의 마음 안에는 닫힌 문도 없을 뿐더러 있다하더라도 그 문을 열면 웅크린 한 꼬마가 아닌 탐스러운 과일과 빛나는 보석이 가득할 것 같다. 마치 열려라 참깨에 나오는 문 처럼. 그런데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까. 그럼 참 편하겠다.


오늘도 난 내 마음 속에 닫힌 문을 열어 웅크리고 있는 꼬마와 대화하는 노력을 한다. 꼬마의 닫힌 마음과 다친 마음을 쓰다듬어주면서 나를 위로하고 내게 공감한다. 그리고 또 다시 다칠까봐 두렵다. 서른 일곱이 된 오늘, 여전히 난 그 꼬마인가보다. 


+ 글 더하기  

글을 쓰고 나니 내가 마치 엄청나게 격정적인 성장과정을 거쳤나 싶을 정도다. 억울한 건 나는 온전한 가정에서 (내 기준에서 이만하면) 풍족하고 탈없이 자라 작은 거에도 감사하며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았다. 그런 내가! 육아를 하며 마주하는 나를 바라보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어쩌면 격정적인 삶을 살지 않아서 그러려나 싶기도 하다. 대부분 그러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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