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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e Y Mar 26. 2021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곱씹음

위축 증후군


사실은 누군가 동감해줬으면 하는 마음일게다. 하루를 더 먹을 수록 하루 더 외로워진다. 어차피 세상은 혼자라고, 마음이 단단해져 자신만이 그늘을 채울 수 있다고 말들하지만 마음 한 켠 빈 공간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면에 깊이 빠진다고 우울의 현상이라고 인정하고 싶진 않다. 심리 전문가들은 일단 숨기보다는 세상에 나오라고 조언하겠지만은. 


넷플릭스에서 '지니&조지나'라는 드라마를 론칭했다. 유쾌발랄한 가족 성장 드라마나 '길모어걸스의 빨간 맛 ver.'으로 포장된 범죄, 은폐, 자해, 반항으로 둘러싼 실상 어둡고 다소 불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소 위기의 주부들 냄새 슬슬 나지만 '조지나'라는 인물 심리에 더 초점을 두게 된다. 시즌1 내내 매 화마다 드러나는 비밀이 궁금하기 보다는 조지나가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공감, 예쁜 외모에 가려졌지만 사실은 얼마나 자신의 삶을 만들려고 어떻게 싸워왔는지, 아둥바둥대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외로울지 감정이입이 되어버린다. 과거의 내가 누리던 삶이 있는 장소, 함께 했던 사람들, 내가 머물었던 공간에서 위축대고 뭔가 잘못하고 있는 느낌, 내가 만들어가는 현실을 100% 신뢰할 수 없는 불안감, 미디어 속 인물에게 위로를 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아마 '위축 증후군'같은 건가보다. 


위축 증후군이 생기면서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곱씹음을 한다. 그런 곱씹음이 마냥 기분좋지는 않다. 마치 고등학교 졸업할 때 자신을 탐구하고 알아가고 나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갔어야 하는데 그 숙제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가 이제야 밀려버린 숙제를 발견해 벅찬 기분이다. 초등학교 방학숙제때 일기를 매일 안쓰게 되면 결국 전날 몰아서 쓰게 되는데 그땐 인터넷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날씨도 아무거나 동그라미 쳤던 기억이 난다. 삐딱하게 세상을 보는 시선으로 사춘기를 맞이하듯이 누구나 삶의 한 번쯤 사춘기가 온다. 학창시절 사춘기를 겪어보지 않아서인지 타격이 애 낳고 서른일곱이 되어서야 왔나본데 어쨌든 철 들어서 와서 부모님 괴롭히는 게 아니라 다행일지도 모른다.


나를 바라보기
함께 쓰다듬기


대학 다닐 땐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마음이 풍성하게 채워졌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험해 보며 대리 만족할 수도 있고 응원받고 앞으로 나갈 힘이 생기기도 했다. 이제는 자기계발서가 마냥 공감되진 않는다. 사업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고 스쳐가는 내용이 많아지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나, 이 독자가 이십때보다 더 많은 걸 겪어내고 있어 허상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다보면 참 많은 걸 해냈구나, 이룬 게 많구나 생각된다. 한 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나열된 경력 속의 열정적인 지난 날과 현재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마냥 좋아보이는 과거 속에 잊혀진 게 있다. 회사 일을 하면서 어느 순간 알맹이의 단점은 가리고 장점을 부풀리는 포장이 허무해졌었다. 무조건 좋아보이게 해서 사람들에게 돈을 내게끔하는 업무가 의미없게 느껴졌었다. 깊게 들여다보면 과거에도 번아웃은 있었다. 


시간 여유를 가지고 깊이 들어가면 위축증후군의 원인을 만날 수 있다. 과거의 인연과 비교해 본 현재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정으로 충만했던 그 때는 주변에서 나를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이 내가 나를 추켜세우고 인정하고 나를 믿었다. 남의 회사에서 일하든 다른 사람 좋은 일을 해주든 오늘 하루를 열정에 태워 지쳐도 결국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안에 단단하고 건강한 나무 줄기가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를 생각하고 내 안으로 돌아가 집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건 내 안의 건강한 나무를 심고 줄기를 단단하게 만드면 될 일이다. 위축되고 외면하고픈 감정은 단순히 비교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먼저 나를 인정하고 내게 집중한다면 주변과 또는 과거의 내 환경과의 비교도 건강한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사회에 나가고 조직에 속하고 작은 일이라도 해내며 성취감을 느끼면서 내면의 나무는 통이 굵어지고 가지에서 푸릇푸릇 생기발랄한 잎이 반짝인다.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면 윤기 자르르한 열매가 맺어질 것이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가족을 돌보고 과거의 인연과 공통점이 사라지는 순간 내 안을 들여다보면 내가 돌보지 못한 나무의 모습을 보고 한없이 슬퍼지는 날을 만나고야 만다. 잠깐만 슬퍼하고 다시 물 주고 빛을 가져오고 신선한 바람도 불어주고 이야기도 해주며 단단해지고 있다. 나를 먼저 들여다보고 평생 친구가 된 우리 가족과 함께 쓰다듬어주면 전보다는 말랑말랑하지만 유연한 나무 줄기가 자라고 탐스러운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릴 것 같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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