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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e Y May 16. 2023

열심히 살면 안 되나요

²⁰²³⁰⁵¹⁶ 요가일기 ժɑყ7

서른 초반이었나, 유아용품계의 명품이라고 불리는 브랜드의 면접을 간 적이 있다. 작은 외국계 브랜드가 그렇듯 PR과 마케팅의 영역을 나누지 않기에 마케팅 총괄 팀장을 만났다. 나이를 쉽게 가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정확하진 않지만 그분도 서른 중후반 남짓 되었던 듯하다. 당시 나는 떠오르는 프리미엄 유아용품 회사의 PR을 초반부터 어느 정도 수준까지 끌어올린 당사자였고 PR 전문가 자격증도 따며 일에 온하루를 바쳐가며 열정을 다할 때였던지라 생기 넘치는 젊은이였을 거다. 면접의 흐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이 회사가 유아용품 업계에서 누구나 갖고 싶도록 최고가 되게끔 노력하겠고 저 또한 이 분야에서 영감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뉘앙스로 어필했던 것 같다. 그리고 들었던 대답은...


"너 같은 얘 정말 싫어.

사실은 내가 그렇거든. 뭐든 열심히 해.

안 봐도 뻔해, 넌 뭐든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겠지.

그렇게 아등바등 노력하는 얘들이 싫어."


친한 지인도 아니고 더군다나 초면인데 타인에게 공격적이거나 비꼬는 말을 정면으로 듣는 경험은 그다지 흔치 않다. 그 순간이 뇌리에 잊히지 않는다. 난 그저 '아... 네...'라고 대답했고 그때부터였다. 내 삶이 잘못됐나, 내가 너무 노력하나, 내가 안 되는 걸 억지로 되게 만들고 있나 라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 마케팅 총괄 팀장의 말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난 뭐든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한다. 결과가 엄청나게 좋진 않지만 그 결과에 연연한 적 없기에 노력 대비 크게 성공했거나 크게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내가 잘못 산 걸까.


과거와 다른 삶을 사는 지금 가끔 그때의 가시 돋친 말과 표정, 괜스레 불편했던 공기가 스쳐간다. 밖을 다니다 보면 언뜻 보이는 그 브랜드 제품을 볼 때마다 늘 생각한다. 너무 유명한 브랜드여서인지 정말 인상 깊은 순간이여서인지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다. '설마 기억이 왜곡되었겠지, 저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했나?' 했겠나만 영문 모르겠지만 내 기억 속엔 정말로 저렇게 각인되어 있다.


나도 모르게 그 면접관의 공격을 수용하고 인정했던 것 같다만 요즘은 그녀의 의견에 대한 반항심이 든다. 더불어 그런 말을 했던 그녀의 뒷배경도, 그녀의 삶도 전혀 모르지만 그 시절 그녀가 이해되기도 하고 다독여주고 싶기도 하다. 그때 면접 즈음 무슨 일이 있었겠지, 때마침 열정적인 어린 날 보며 자신을 보는 듯싶었을 거다. 설마 그렇지 않고서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제정신인가.


지금도 나는 모든 일을 열심히 대한다. 안타깝게도 나란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베짱이 같은 여유보다는 끊임없이 계획하고 끈질기게 실행한다. 너무 피곤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주변은 두 가지 반응이 대부분이다. '너는 정말 잘 될 거야.'라고 응원해 주는 시선들, '뭐 저렇게까지 하며 사는지 모르겠다'라는 안타까운 시선들. 주변에서 어떤 말을 들어도 내 길을 묵묵히 가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나라고 상처받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정말 많은 일에 진심으로 살다 보면 생기는 문제는, 가끔 숨을 쉬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 왜, 도대체 나만 열심히 사나라는 한탄을 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나의 어리석은 착각도, 그날 그 외국계 기업의 마케팅 총괄 팀장도 틀렸다.


누구나 열심히 산다. 가족조차 자신이 아닌 타인을, 그리고 타인의 삶을 재단할 수는 없다. 힘껏 뛰어 저 앞으로 나가든, 잠시 머물러 목을 축이든, 제자리에서 숨을 고르든 누구나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다. 삶을 걸어가면서 배우자를 만나 발을 맞추고 잠시 앉아 아이의 눈을 보고 거북이걸음으로 걷다가 다시 천천히 뜀을 준비할 때도 올 것이다. '아니요, 저는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데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열심히 사는 거 별거 아니다. 지금 당신의 그 속도가 당신의 최선이다. 당신의 속도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다.


허나 잊었나, 이 글은 '요가일기'다.

오늘의 요가는 빈야사였다. 지난주 '힘이 들어갔던'(힘들다가 아니다) 빈야사를 시작하며 생각했다. 내가 힘겨워하는 빈야사라고 하더라도 아등바등 노력하지 않더라도, 요가라는 친구는 물 흐르듯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요가 매트를 정돈하고 자리에 앉는 순간 시끄러웠던 마음이 정지되었다. 그리고 순간 외국계 프리미엄 유아용 품사 면접이 떠올랐다. 삶에서 간절히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가끔 힘들고 버거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요가에 대한 직업적 목표가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누가 말하는 '지독히 애쓰는 근성의 나'와 다르게 그 힘겨운 빈야사도 '그러한 내게' 너무 쉽고 평온했다. 요가야, 너는 너무 비싸지만 내게 와줘서 고마워. 사실 내가 네 곁에 온 거지만. 난 끝까지 주체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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