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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으로서의 교육 Mar 31. 2020

순수하고 맑은 마음들이 많은 반과의 상호작용

#과거의 오늘


2019년 3월 31일

예비교사들 중에 수업을 잘 듣는 모범생 스타일의 학생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중에는, 마음은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데 잘 듣는 표정 관리를 기막히게 잘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습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그래도 학생들인지라 시간 차를 두고 눈빛이 변합니다. 언젠가는 들키게 돼 있습니다. 고작 그런 이중성을 이 푸른 시절에도 강화하고 있는 그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교수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초중고 시절에도 그랬기 때문에 자연스럽습니다. 학기 마치고, 훨씬 오랜 시간이 흐르고도 연락이 오갑니다. 삶의 동지를 얻는 것이죠. 하지만 그중에는 학점을 염두에 두고 교수자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관리를 상담 요청으로 가장하기도 합니다. 그 방향으로 오래 길들인 마음을 쉽게 바꾸기 어려울 것입니다. 알지만 응합니다. 학기 마치고는 당연히 태도가 돌변합니다. 이런 학생들 중에는, 아주 드물지만 성적 강박증으로 치료를 받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수업을 할 때 정면에 서 있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전체 학생 개개인의 이해도를 알 수 없습니다. 가까이 가 봐야 알 수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무얼 아는지, 무얼 모르는지, 아픈지, 졸린지, 우울한지, 마음이 붕 떠서 나가고 싶은지, 고민이 많은지, 알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지 않은지 몸의 말이 더 잘 들립니다.


수업을 하다 보면 수업 흐름에 결절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 관계의 매듭을 묶는 학생들이 보입니다. 학생과 학생 사이, 교수자와 학생 사이를 이간질합니다. 학창 시절 왕따를 주도했던 경험자들입니다. 이런 매듭은 빨리 풀지 않으면 한 학기 수업이 어려워집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부드럽게 녹이거나 달리 틈을 안 주고 단호하게 대처하곤 합니다.


가끔, 순수하고 맑은 마음들이 많은 반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반의 수업은 이런저런 상처와 피로를 다 씻겨 줍니다. 학생들 사이에도, 교수자와 학생들 사이에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 꿀이 떨어집니다. 이런 반에 한 두 명의 매듭을 묶는 학생들이 있어도 힘을 못 씁니다.

학기 초에 온 신경을 쓰며, 한 주 한 주 살얼음을 걷는 마음으로 관계를 맺는 데는 수업이 그냥 이루어지지 않으며, 지식만 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 속에 수업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3월이 그렇게 지나갑니다.
이심전심, 쉽지 않은 3월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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