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의 3월 (2)

떨어지는 유리공

by 인생정원사 선우
* 이 글은 예전 글을 다시 퇴고했습니다.


그림. 선우


"그것은 말이야 하루 아침에 오지 않았어. 마치 컵에 물방울 하나가 더해졌을 때 넘치는 것 같았어."

어느날 갑자기 시계는 고장난다. 모든 생각이 제멋대로 삐걱거린다. 발바닥에 진득한 풀이 묻은 것 마냥. 약을 먹고 커피를 삼키고—전화를 건다. 주어진 일을 쫓기듯 수행한다.

아이의 눈을 들여다 본 순간 눈앞은 도리어 새카매진다. 휘청이듯 가라앉는다. ‘아, 여기서 쓰러지면 안 돼.’ 아이 손을 꽉 붙든다. 놓을 수 없어. 수없이 다녔던 길이 낯설다. 집에 도착해 아이를 맡기고, 그 길로 잠이 든다. 죽은 듯이.


"나는 말이야, 이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했거든? 희미한 빛이 따뜻하리라 믿었어. 아니더라. 바깥은 어둡고 축축해. 아, 나가는 문이 보이지 않아. 손잡이를 찾을 수 없어. 발밑의 흙은 아무리 움켜쥐어도 손가락 사이로 흩어져 버리지."


손에 꽉 차다 못해 살짝 큰 유리공은 놓칠까 두렵다. 온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애써 순간을 계획하고 이어 붙인다. 틈을 만들면 안돼.


"있잖아. 이런 생각이 들어. 나는 떨어지는 공일까, 혹은 그 공을 놓쳐 버린 손일까? 한없이 마음이 추락하는 날은 말이야. 영원히 떨어지고 있는 느낌이거든. 만약에 놓친다면 조각날까, ...아니면 다시 튀어 오를까?"


출렁이듯 통증이 몸을 훑어 내린다. 마음에 쳐둔 겹겹의 그물이 빛을 잃고 희미해진다. 결국 놓쳐버렸다. 불안은 깊은 강물처럼 유리공을 삼킨다. 캄캄한 밤의 물에 빠진 유리공 안은 도리어 완벽하게 안전하다. 우연히 마주친 낯선이에게 묻는다. 네 온기를 조금만 빌려줘.

숨을 들이마시고 날 것의 이야기를 뱉는다. 쪼그라들었던 폐포가 펴진다. 이윽고 모든 이야기가 끝나니 스노우볼은 물거품처럼 스러진다.


나는 어스름이 밝아오는 뭍에 선다.

민낯의 기억이 남긴 발자국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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