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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정원사 Dec 24. 2024

오티즘(Autism), 메리 크리스마스!

어린이는 모두가 꽃이에요.


2019 블루 크리스마스

정원이가 만 3세 때 직장 어린이집을 잠시 다녔다. 아이가 아버지를 잘 몰라본다는 이유로 어린이집 원장은 아이아빠에게 산타 할아버지를 부탁했다. 파티 당일, 우리는 다 같이 율동하는 아이들 뒤에서 정원이의 남과 다른 모습을 제대로 보았다.  아, 아이가 조금 다르구나. 그렇구나. 아마 아이아빠가 그것을 가장 깊이 깨달았을 것이다. 엄마는 매일 아이를 보니, 조금씩 눈치채고 있었고 이미 언어치료를 반년이상 다니던 때였으니까.

크리스마스 파티 다음날, 어린이집 원장은 만 4세 반은 정원이는 같이 못 다닐 것 같다고 퇴소를 권유했다. 이 아이가 일곱 살(만5세)까지 어린이집을 다니는 것은 기적이라면서. 아, 그럼, 산타는 시키지 말지. 5년 전의 크리스마스는 우리에게 참 날카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Autism-blossom

<느린 시계의 정원> 매거진의 영문명을 계속 고민하다가 '오티즘-블로섬'으로 정했었다. “자폐, 꽃 피우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오티즘은 자폐증이다. 한자로는 스스로 自, 닫을 閉.  닫혀있다는 느낌이 강한 탓인지 최근엔 Autism(오티즘)이란 말을 많이 쓴다. 오티즘은 조금 다른데,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self를 의미하는 auotos의 명사형 어미다. 최근 자폐 스펙트럼이란 말을 많이 쓰는 이유는 사실 자폐성 장애의 원인은 많은 부분 밝혀지지 않았고, 그 양상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어린이의 어머니가 될 때까진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의 노고에 대해 글쓰기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그저 각자의 아이에 맞춰 노력하기에, 나 역시 별다를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나란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아, 어디서부터 풀어내야 할까, 용기를 내야겠지. 이 작은 아이의 이야기를 기록해야 한다. 나의 글이 아이의 유년의 증거가 될 거니까. 글 안에서 내 아이는 여느 아이와 같이 웃고 사랑하며 힘내서 살아가는 꼬마니까.

브런치 작가에 합격하고 정원이에 대한 글을 세 개 정도 발행하고 정체기를 가졌다. 그래서 12월 한 달 동안 매일 글쓰기에 도전했다. 그러면 정원이에 대한 글을 열심히 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고민이 깊어졌다. 정원이에 대한 글쓰기를 통해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우리의 일상스케치? 자폐로 인한 일상의 어려움?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간절한 바람이겠지. 하지만 <어떻게> 말해야 하나 아무것도 정할 수 없었다. 삶은 현재진행형이니 아직 결론은 없는데, 글을 완성형으로 쓰려니, 막힐 수밖에. 

사는 모습 그대로 먼저 준비된 이야기부터 꺼내자. 순서는 나중에 정하면 되지. 퇴고는 책으로 나오는 그 순간까지 계속되는 법인데, 정원이 이야기만큼은 너무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컸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닌데, 여전히 완벽주의를 내려놓지 못함을 깨닫는다. 글이 아닌 내 삶을 인정받고 싶은 이상한 욕심이었음을 알아차린다.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대단한 것을 쓰는 게 아니니까 아끼지 마. 고스란히 써 내려가는 게 중요해. 진심을 담아서"  



글을 잘 모르는 정원이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

2년 전 자폐아이 부모를 대상으로 <포트폴리오>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아이의 역사를 누군가에게 보여줄 때 이러한 포트폴리오를 쓰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신청했다. 강의를 하는 분도 성인 자폐아이의 어머니였고, 사진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준비해 보란 말을 듣지 않고 <정원이에게 쓰는 편지>를 준비했다. 그때 그 강사님의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편지라고요? 아이가 읽을 수 있나요? 잘~ 써보세요." 약간의 비웃음이 조금 섞여있다. 정원이는 무발화다. 글도 잘 모르고 말을 알아듣기도 어려운데 어찌 편지를 쓰느냔 말이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서운 건,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관주의자이기에 난 지금도 글이 정원이에게 벽이 아닌 다리는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기대는 여전히 있다. 정원이 입을 통한 편지글을 썼고, 일부를 클래식 FM 가정음악에 사연을 보냈더니 아나운서가 울었다. 슬픈 이야기 아닌데, 진심을 담으면 눈물이 되기도 하나 보다. 이제 나의 편지를 쓸 차례다. 정원이 곁에서 정원이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쓸 그런 이야기.

“이제 아이가 말을 한다는 상상이 더 낯설어.”

언젠가 남편이 건넨 한마디 말. 아이는 정원이 하나기에 보통의 아이를 육아하는 법을 우리 부부는 모른다. 아이에 대힌 꿈은 다시 뼈를 깎는 아픔을 동반하고 다시 지어졌다. 이제 나의 꿈은 정원이에게 좋은 만남의 축복이 있고, 어딜 가도 조금은 적응할 수 있는 일상상활기술을 키우는 것이다. 남편의 꿈은 우리가 오래 사는 것이다. 건강하게. 조금 더 정원이의 그늘이 되어줄 수 있도록. 꿈은 계속된다. 글은 그 꿈을 이뤄가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2025 크리스마스 이브

우리에게 아직은 명절처럼 지내기 어려운 날이 크리스마스다.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다시 정원이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아이와 나에게 주는 기록이 아이를 둘러싼 인연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 글이 정원이의 손을 잡고 안전한 미래로 우리를 이끌어주길 바란다. 글을 모를 거 같던 정원이는 이제 도움을 받아서 라벨프린터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쓸 수 있게 됐다. 그저 이 모든 여정이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어 우리를 안아주길, 소망하며 난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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