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움과 멀어짐 사이에서 배운 관계의 온도
언젠가부터 ‘인맥’이라는 단어가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계산처럼 느껴지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유지해야만
내가 사회 속에서 유효한 존재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불안이 따라왔다.
어릴 때는 단순했다.
좋으면 함께 있고, 싫으면 멀어지면 됐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 경계가 흐려졌다.
좋아하지 않아도 인사해야 하는 사람,
가까워지지 않아도 유지해야 하는 관계가 늘어났다.
그 속에서 나는 종종 ‘관계 피로감’을 느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진짜 인맥이라는 건 사람의 수로 셀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누군가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내가 그 사람 앞에서 조금은 약해질 수 있다면,
그건 이미 깊은 관계의 형태다.
누군가는 나에게 조언을 해주고,
누군가는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그런 사람들을 떠올릴 때면 마음이 조금 따뜻해진다.
인맥이란 결국 나를 통해 이어지는
‘따뜻한 온기’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누군가와 가까워지기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서로의 시간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조용히 손 내밀 수 있는 관계.
그게 내가 바라는 사람 사이의 거리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멀리서 바라봐야 할 때가 있다.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연결일 때가 많다.
붙잡지 않아도,
그 사람이 내 삶 어딘가에 계속 머문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좋은 관계다.
결국 관계의 본질은
‘거리를 조절하는 능력’인 것 같다.
너무 가까워서 숨이 막히지도,
너무 멀어서 잊히지도 않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서로의 삶이 나란히 흐르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그 선을 지키는 일은 어렵지만,
그 선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더 단단해진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는
따뜻한 여백을 남긴다.
가끔은 ‘가까움’보다 ‘적당한 거리’가
관계를 더 오래 숨 쉬게 한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거리를 두는 건 멀어지는 게 아니라, 오래 보기 위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