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점을 없애려 하지 말고, 단점이 빛날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자.
사람은 누구나 자신 안의 단점을 안고 살아간다.
어릴 땐 그게 마치 흉처럼 느껴졌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누군가의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넌 왜 그렇게 느려?”
“그 생각을 왜 해?”
그 말들이 내 존재 전체를 규정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됐다.
단점이라는 건 절대적인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생기는 성질’**이라는 걸.
한 공간, 한 시선, 한 상황에서는 단점으로 보일 뿐,
조금만 각도를 바꾸면 그건 장점이 되기도 한다.
느린 사람은 신중하고,
고집이 센 사람은 확신이 있다.
감정 기복이 있는 사람은 감수성이 깊고,
모난 성격은 어느 틀에도 쉽게 갇히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단점이라 부르는 것들은
누군가에게는 결점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능성이다.
그래서 단점을 없애려 애쓰는 대신,
그 단점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자리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요즘 들어 자주 느낀다.
예민한 사람은 섬세한 일을 잘하고,
낯가림이 심한 사람은 진심 어린 관계를 만든다.
외향적이지 않아도, 사람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단점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단점을 어떻게 다루는지 아는 사람’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 안에서
스스로를 평가하고 깎아내린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사람마다 필요한 결이 다르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어떤 이에게는 꼭 필요한 성질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단점을 숨기기보다,
그 단점이 빛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고칠 수 없는 단점도 마찬가지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나에겐 ‘중졸’이 내 최종 학력이다.
(검정고시도 최종학력으로 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나는 또래보다 큰 키와 통뼈라는 체형을 단점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것들이 누군가에겐 단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오히려 내가 가진 다른 장점들을 더 크게 봐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걸.
사람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나의 단점을 단점으로 보지 않는 사람,
혹은 내 단점이 빛날 수 있는 공간을 만나는 일.
그게 관계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누군가가 내 단점을 말하더라도 예전처럼 움츠러들지 않는다.
그건 그저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나의 전부를 설명하는 문장은 아니니까.
단점이란 결국, 상대적 시선 위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 완벽해지려는 대신,
나는 나답게 살아가려 한다.
단점을 고치기보다,
그것을 이해하고 다루는 법을 배우면서.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조금씩 나다운 모양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게, 내가 생각하는 진짜 성장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