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준은 나를 증명하는 선이다

처음의 기준이 나를 억누르지 않게, 그러나 잃지 않게.

by IN삶

중간고사를 볼 열 과목 중, 일곱 과목의 시험이 이번 주에 있었고, 오늘 세 과목의 시험이 끝났다.
이번 시험 기간 내내 느꼈던 건 하나였다.
나는 생각보다, 나 스스로에게 세운 기준의 역치가 높다.


공부를 했음에도, 늘 불안했다.
덜 했다고, 오늘은 한 문제도 못 풀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의심했다.
하지만 또 막상 시험지를 펴면 생각보다 손은 잘 움직였다.
불안과 현실의 간극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나의 기준선을 넘나들고 있었다.


이번 시험은 이상하게도 긴장이 덜 됐다.
월요일 시험은 솔직히 PPT만 보고 들어갔고, 수요일 과목은 그나마 조금 아는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포기와 평온 사이 어딘가의 마음이었다.
그런데도 막상 시험지를 덮으면, “다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완벽하지 않은 준비, 애매하게 아는 느낌.
그래도 답을 써 내려가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고, 밀려 있던 방 청소를 했다.
책상 위 먼지를 닦으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마 가장 부담이 됐던 세 과목을 끝냈기 때문이겠지.


이번 시험은 대부분 오후에 봤다.
아침엔 준비를 하고, 오후엔 몰입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한 번 집중하면 미친 듯이 몰입하지만,
그 집중이 깨지는 순간, 다시는 그 감각을 잡지 못한다.
그 집중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이틀쯤.
그래서 시험 기간은 늘, 그 이틀의 시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준의 역치를 낮출 필요가 있을까?


그 기준 덕분에 나는 지금의 자리까지 왔고,
100명 중 7등이라는 결과와 성적 장학금도 그 기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누가 뭐라 해도, 공부에 대한 기준만큼은 쉽게 낮추지 않겠다고.


기준은 단지 나를 힘들게 하는 선이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알려주는 증명선 같은 것이다.


물론, 그 기준이 나를 잠식할 때도 있다.
정성을 다해 만든 여행 영상을 보고도, 만족보단 허무함이 앞섰다.
그래서 두 번째, 세 번째 날의 영상은 여전히 외장하드 속에 있다.
그때 깨달았다.


‘처음으로 한 것이 곧 나의 기준이 되는구나.’


처음으로 받은 성적, 처음으로 들은 칭찬, 처음으로 받은 월급,
우리는 그 ‘처음’의 자리보다 떨어지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밀어붙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기준은 우리가 올라야 할 ‘벽’이 아니라,
우리가 지나온 길을 보여주는 흔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첫 결과는 나의 삶의 기준이 되지만,
그 기준이 나를 억누르지 않게,
다만 나를 증명하는 선으로 남기를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부정적인 걸 기억하지 말고, 긍정적인 걸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