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은 나를 구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지켜준다.
계획이 없으면 불안하고 우울해진다.
몇 년 동안 ‘즉흥적인 삶’을 살아보려 했지만, 결국 나는 그게 즐겁지 않다는 걸 알아버렸다.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나 같았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이 내 뜻대로 흘러갈 때.
그때 느껴지는 희열과 만족감이 나를 살아있게 했다.
나는 할 일이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오늘은 그냥 푹 쉬어.”라는 말이 나를 더 지치게 할 때가 있다.
가만히 있는 게 쉬운 게 아니라, 나에겐 오히려 고통이다.
할 일이 있는데 미루고 있는 그 시간들이 쌓이면서, 스스로를 무너뜨려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오히려 매일 열 시간씩 한 달 내내 일했던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
그저 바쁘게 나를 갈아 넣는 게, 나다운 삶이었다.
나는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어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사람이다.
그 울타리가 없으면, 나는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흔들리고 결국 무너질지도 모른다.
계획은 나에게 단순한 일정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울타리’다.
그 틀 안에서야 나는 안심할 수 있다.
그게 나를 통제하고, 동시에 나를 지켜준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일정 앱을 써봤다.
알림을 맞춰도, 캘린더를 꾸며도, 결국 나는 펜을 잡게 된다.
손으로 휘갈긴 듯한 메모 한 장이 오히려 나를 버티게 했다.
아날로그는 나를 닮았다.
비뚤어진 글씨, 얼룩진 잉크 자국까지도 모두 나의 흔적이다.
며칠 전, 몇 년이 지난 다이어리를 꺼내 들었다.
다시 펜을 들고 적어 내려가면서 문득 생각했다.
‘이건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구나.’
그 울타리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는 방패가 된다.
아직 여리고 흔들리는 나에게는 그런 보호막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울타리를 단단히 세워본다.
스트레스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더 이상 베개를 적시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