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음의 이름을 아는 순간

‘어렵다’와 ‘못한다’ 사이에서

by IN삶

안 하는 것은 내 사전에 당연히 있다.
어떻게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겠는가.
누구나 하기 싫은 일이 있고,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안 한다’와 ‘못 한다’는 의지의 유무에서 갈린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나는 여기서 ‘어렵다’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요즘 들어 사람들에게서 “그건 좀 어려우세요?”라는 쿠션어를 자주 듣는다.
그 말에는 사실 희망이 없다.
‘못 한다’와 똑같이, 이미 실패를 전제하고 있는 표현이다.


나는 공부를 오래 하지 못한다.
앉아서 5시간씩 두 번은 가능하다.
즉 하루 10시간 공부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장거리 경주가 아니라 단거리 질주형 인간에 가까운 셈이다.


수능은 나에게 고통에 가까웠다.
D-300, D-200, D-100, D-50, D-10…
숫자가 줄어들수록 불안은 커졌는데
나는 그 불안을 버티며 끝까지 달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세 번의 수능을 치렀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공부했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지금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더 잘 나온다.
왜냐하면 지금은 ‘내가 달릴 수 있는 거리’로 나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 공부하는 것이 ‘어렵다’가 아니라 ‘못 한다’는 표현이 더 맞다.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 방식이 그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걸 왜 이제야 인정하게 되었을까.
세 번의 수능이 지나고,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세상에는 각자의 재능이 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열망’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나는 열망만 있으면 뭐든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명확히 안 되는 것이 있었다.


두 번을 다시 수능으로 돌아간 것을 후회한다.
그 시간에 차라리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깊게 탐색했어야 했다.


요즘 4년제 대학 졸업장은 운전면허증과 비슷하다.
거의 모두가 가지고 있고,
없으면 “왜 없어?” 라는 질문을 받는 종류의 것.
하지만 면허가 곧 운전실력은 아니듯,
졸업장은 곧 방향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수능을 망쳐도 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수능은 그저 하나의 관문일 뿐,
네가 살아낼 인생의 총합과는 거리가 멀다.


내 동생아.
지금은 힘들고, 불안하고, 도망가고 싶겠지.
수능이 끝나면 그 감정조차 사라질 수도 있다.


이제 겨우 며칠 남았다.
조금만 더 해 보자.
하지만 네 길의 방향은 수능이 아니라 너가 정하는 것이다.


나는 늦게 깨달았지만,
너는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한다.


꿈이 있다면, 그 꿈에 집중해.
그게 네가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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