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폭행의 진짜 이름은 ‘서툰 사랑’입니다

단수된 집에서, 다시 떠올린 할머니 집의 따뜻한 폭력

by IN삶

집에 도착하자마자 알았습니다. 물이 단수가 되었더군요.

손을 씻으려고 수도꼭지를 돌렸다가 빈 공기만 느끼며, ‘아… 큰일 났다’ 싶었습니다.

내일 소개팅이 있는데, 물이 언제 다시 나올지 알 수 없다니. 이런 상황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요.


하지만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물이 아니라,

할머니 집에 다녀온 후 꾸준히 떠올랐던 작은 생각 하나입니다.


할머니 집에 가면 거의 예외 없이 ‘식폭행’을 당합니다.

밥을 먹고 왔다고 말해도, 배가 터질 것 같아도,

라면은 밥이 아니다 하고, 과일은 간식이 아니다 하고,

“오랜만에 왔는데 밥도 안 줬다고 하면 안 되지.”

할머니는 이 문장을 주문처럼 읊조리며 또 다른 무언가를 제 앞에 놓습니다.


왜일까요?

왜 우리 세대의 ‘가벼운 식사’는 할머니들에게 통하지 않을까요?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우리는 손님입니다.

그들의 표현 방식에서 ‘손님’은 단순히 방문한 사람이 아니라,

애틋한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들은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사랑처럼 느끼고,

그 사랑의 모양이 음식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또 하나의 이유는, 미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건강한 모습’은 적당한 몸과 균형 잡힌 컨디션이지만,

그 세대에게 건강은 ‘잘 먹는 것’이 기본이자 전부입니다.

조금만 야위어도 걱정하고, 조금만 피곤해 보여도 영양부족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더 먹이려고 하고, 더 채워 넣으려고 합니다.


결국 결론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에게 우리는 오래된 애착 인형 같은 존재였습니다.

귀엽고, 예뻐서, 무언가를 먹이는 과정을 통해

그들은 우리를 더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끼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도 위로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고양이를 보면 자연스럽게 츄르를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요.

고양이는 츄르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 순간만큼은 ‘사랑을 주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며 행복해집니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그들에게 그런 존재였던 거죠.


간식을 먹여야 하고, 밥도 먹여야 하고,

과일도 먹여야 하고, 음료도 챙겨 마시게 해야 하는 사람들.

오랜만에 보면 더 챙겨 먹이고 싶은, 그런 존재.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식폭행은, 그저 어른들의 서툰 사랑이었습니다.


표현 방식은 다르고, 마음을 전하는 언어도 다르지만

그들의 방식은 늘 ‘음식’이라는 따뜻한 형태로 우리 앞에 올라왔습니다.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기꺼이 넘겨받던 그 밥 한 숟가락이,

사실은 세대가 달라서 더 불완전한 형태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물은 단수되었지만,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마음 한구석에 따뜻한 물이 스며드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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