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작은 책임감이 가장 무거운 날

산처럼 쌓인 팀플 속에서 나를 다시 세우는 법

by IN삶

팀플이 산을 이루고 있다 보니, 한 주 안에 발표가 두 개씩 있다. 이번 주에도 하나, 다음 주에도 하나. 그런데 팀플 네 개 중 세 개의 조장을 맡았다.
조장은 모든 것을 주관하는 사람이다. 자료조사를 다시 요청하고, 발표자 역할을 조정하고, ppt 제작에 관여하고, 때로는 아무도 맡지 않은 발표까지 직접 맡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사소하지만 가장 잊어서는 안 되는 일.
발표 자료를 출력해서 제출하는 일.


오늘 발표가 있었는데, 나는 그걸 깜빡했다. 프린트도, 제출도.

발표 직전에 급하게 제출했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뛰어서 교수님 연구실에 가져다 드렸다.
나를 믿고 맡겨준 조원들에게 괜히 미안했다. 작은 책임 하나도 챙기지 못한 내가 너무 답답했다.


왜 이렇게 정신이 없을까.
왜 이렇게 하찮은 것조차 놓치고 있을까.
그래서 내일 발표는 바로 자료 업로드를 하고, 프린트 여부도 세 번씩 확인해 두었다.
원래라면 미리미리 끝냈어야 했는데, 그냥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아마 나는 지금 이 알량한 책임감을 내려놓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오늘 확인한 성적이 평균 이하였다는 사실이 그 생각을 결정적으로 만들었다.
내 대학 생활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
내가 점점 감당하지 못할 영역까지 손을 뻗고 있었구나 싶었다.


사실 한 과목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번 중간고사도 벼락치기를 해서 치렀고, 그 결과가 너무 솔직하게 돌아왔다.
이제 조금은 겸손해져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조장을 자처하는 이유가 단순히 나이가 많아서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아니었다.
내 성적이 무너지는 게 싫었고, 타인을 믿지 못하는 자존심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아니면 누가 해?” 라는 생각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은 지쳐 있었다.
누군가에게 맡기면 되는데, 모든 걸 스스로 끌어안아 두 배의 일을 하고 있는 건 나였다.


그런데, 오늘 아주 사소한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작은 책임조차 해이해지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운동을 하고, 밥을 잘 먹고, 잠을 충분히 자고, 물도 잘 마시고.
그리고 공부도 이제는 제대로 시작해야겠다고.


많이 지치고 힘들었던 하루였다.
어제도 오늘도 제대로 잠을 못 자서 버거웠지만, 곧 쉬는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버티는 중이다.


가끔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삶을 버티며 살고 있을까.
내 능력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을 계속 해내고 있어서 그런 걸까.
내 에너지를 끝까지 끌어다 쓰는 기분이 든다.


연애를 시작하면 에너지가 분산될 텐데, 오히려 체력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체력을 길러두어야겠다.
지치지 않기 위해, 쓰러지지 않기 위해,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해.


오늘도 잘 해냈다.
비록 작은 실수가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버티고 있다.
그리고 그 버팀이 언젠가는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거라는 걸 안다.


작은 책임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
그게 지금의 나다.
오늘의 나는 흔들렸지만,
내일의 나는 조금 더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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