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이해기/김만희
MZ세대의 브랜드 구분법
퍼스트 무버 VS 퍼스트 팔로워
필자가 국내 패션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다니면서 느낀 바가 있다. 바로 고객을 인구통계학(Demographic)에 맞게 정보 수집을 설계하고, 설계된 데이터 중심으로 마케팅 계획을 세우면 웬만하면 맞아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사실 통계적으로 보면 수집된 데이터는 중간에 수렴하기 마련이고, 그 중간값을 목표로 한 마케팅 전략은 매스마케팅(Mass Marketing)에서 최적 Optimum)의 전략이 된다. 그만큼 매스마케팅은 기준이 되는 평균이 중요했다. 평균을 중심으로 전략을 짜면 그만큼 리스크는 줄어들었다. 아울러 평균을 중심으로 기획할 때 중요했던 것은, 선진사례의 분석이었다. 적절한 분석 자료에 외국에서 잘나가는 브랜드, 마케팅, 광고 사례는 업계에서는 성공 방정식으로 통했다.
마케팅 공식이 사라졌다
합리적인 마케팅 공식이라고 할까? 적절한 트렌드 분석, 시장에서 성공하고 있는 벤치마킹 브랜드 파악, 그리고 소비자 눈높이에 맞게 만들어진 콘셉트와 상품이면 시장에서 신선했고, 반응이 있었고, 팔렸다. 패션기업에서 15여 년 간 근무하며, 회사가 가진 의사결정 체계 안에서 비즈니스 스타일을 흡수하며, 패션마케팅을 나름 괜찮게 하는 마케터로 성장했다. 회사에서 주어진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고, 효과를 내는 방정식은 상수는 고정적이었고, 마케팅 예산만이 변수였다. 위의 의견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마케팅 성공방정식 중에서 마케팅 상수로 트렌드, 선진사례, 차별화 콘셉트는 필수적이었고 거기에 마케팅 예산을 얼마나 투입하느냐에 따라 마케팅 성과가 결정됐다. “얼마 태웠어?” 광고비는 흔히 태운다고 한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 가는 이야기지만, 마케터들에게는 소위 마케팅 예산이 얼마나 있는 브랜드를 담당하느냐에 따라 마케팅 담당자가 대접(?) 받는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쩐’의 전쟁 시절이었다.
그런데 근래 스트리트 패션과 MZ세대의 소위 말하는 ‘찐’ 브랜드들을 접하면서 내가 배웠던 마케팅 공식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일단 위의 공식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소비자는 웬만한 메시지에 반응하지도 않았고, 데이터도 분석하기 어렵게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었으며, 벤치마킹한 메시지, 상품군을 고객들은 카피캣(COPY CAT)으로 치부해버리기 일쑤였다.
‘쩐’에서 ‘찐’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다
아날로그는 인문학적으로 데이터를 해석하기에 중간값(Medium)이 있다. 그래서 벤치마킹 브랜드는 합리적인 가격과 적절한 품질, 유통이면 소비자가 수용하는 시장이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은 ‘0’ 또는 ‘1’로 데이터를 해석한다. 본질이 있거나, 없는 것. 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들은 모든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서 흑 아니면 백으로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보편적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국내 패션 기업들의 성공 방정식이었던, 선진 패션브랜드 상품들을 벤치마킹해서 우리 것에 맞게 만드는 비즈니스 모델이 MZ세대들에게는 0에 가깝게 이해되고 있다. 쩐(money)의 전쟁에서 찐(origin)의 전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그것도 디지털 시대의 속도에 맞게 급속도로 말이다. 위의 이야기를 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오리진 콘셉트가 0인 브랜드는 팬덤(fandom)도 0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1이라도 있는 브랜드는 그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디지털 네트워크에 맞게 급속도로 발전하며, 그것은 팬덤이 되는 것이다. MZ세대에게 ‘1’로 이해되는 브랜드는, 오리지널(Original)을 이야기하는 퍼스트무버(First Mover) 브랜드이며 기성세대들이 구매하는 ‘0’으로 해석되는 브랜드는 그저 패스트팔로우(Fast Follower) 브랜드들일 뿐이다.
진짜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럼 오리지널을 이야기하는 퍼스트무버 브랜드들은 어떤 브랜드일까? 말 그대로 세상에서 처음으로 본인들의 이야기를 일관성 있게 하고, 뚝심 있게 말하는 브랜드이다. 스케이트 문화에 기반을 둔 슈프림(SUPREME), 산악 브랜드이면서 친환경에 집념 있는 파타고니아(PATAGONIA), 에슬레져 문화를 창시한 룰루레몬(LULULEMON), 야구 모자를 처음으로 패션화한 뉴에라(NEWERA) 등이 MZ세대에게는 퍼스트무버 브랜드일 것이다.
사실 예전에는 이 퍼스트무버 브랜드와 패스트팔로우 브랜드의 타깃 시장이 달랐다. 보통 소규모로 시작하며 장인정신으로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퍼스트무버 브랜드들의 가격은 높았고, 유통은 제한적이었으며, 일반 소비자들에게 접점은 매우 낮은 편이었다. 백화점이나 대기업들이 국내에 도입해 소개하지 않으면 일반 소비자들은 알기 어려운 브랜드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정보가 디지털화 되면서 정보 접근이 수월해지자 고객들이 진짜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들은 진짜 오리지널 브랜드들 외에 그와 유사한 콘셉트의 브랜드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 예전에는 매스비즈니스(Mass Business)에서 브랜드 비즈니스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찐으로 살아남아야 고객들에게 인정받는 시대가 됐다.
<요즘은 트로트가수도 찐을 이야기 한다.>
‘찐’은 결국 자기 자신
그럼 찐 브랜드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그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이 추구하는 문화가 있다. 슈프림은 스케이트보드, 파타고니아는 등산 및 서핑 등 아웃도어, 룰루레몬은 요가, 에슬레져 등 각각 추구하는 문화에서 분야의 마니아들과 함께 성장했다. 문화를 이야기하는 브랜드는 모두가 최초이다.
둘째, 아이코닉한 상품이 있다. 슈프림의 레드박스 티셔츠 및 후드, 파타고니아의 플리스 재킷, 룰루레몬의 레깅스, 뉴에라의 피티드캡(Fitted Cap) 등은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상품이다. 그들은 브랜드를 문화와 함께하는 파트너로 여길 수 있도록 노력하지만, 그 브랜드의 핵심 상품을 기반으로 영업하면서 카테고리 내 아이템 킬러 역할을 담당하게 한다. 그 핵심 상품은 굳이 본인들이 처음 개발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문화를 수용하는 팬들에게 최초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합리적인 제안과 철학을 담아 이야기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셋째, 남다른 소통방식이 있다. 슈프림과 같은 브랜드는 고객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들과 단순히 소통하기보다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본질을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를 두고 고민하는 것 같다.
필자가 삼성전자에 신규 프로젝트 건으로 파견 가서 디자인 씽킹에 대해 논의할 때였다. 지금은 너무나 잘나가는 갤럭시 S폰이지만 출시 당시 저조한 반응으로 모든 것을 다 바꾸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프로젝트명도 ‘제로(ZERO)’였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최대 경쟁자인 애플은 도대체 어떻게 신규 기획을 할까 궁금해져서 당시 리더에게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애플은 소비자 조사를 하지 않는다. 벤치마킹도 하지 않는다”였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스포츠의 역사를 쓴 김연아 선수의 라이벌은 아사다 마오가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는 이야기를 곱씹으며, 이제는 ‘쩐’의 전쟁에서 벗어나, ‘찐’이 돼야 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진정한 ‘찐’이 되려면 브랜드에 본인의 목소릴 담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고객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