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이해기/김만희
경기가 나빠진 요즘 ‘완판 쳤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완판은 ‘기획된’ 수량을 모두 팔았다는 뜻이다. 즉 기획한 상품이 100장이라면 판매가 100에 가깝게 나와서 더 이상 팔 수 있는 제품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완판의 이중성, 기쁨과 아쉬움
경쟁사와의 판매 경쟁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와의 마케팅 경쟁, 그리고 소비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완판이라니 가뭄에 이런 단비가 또 어디 있을까?
만약 당신 브랜드의 어떤 신상품이 완판 친다면, 2가지 상반된 감정이 들 것이다. 우선 무척 기쁠 것이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소비자가 우리 상품이 사고 싶어서 모두 매장으로 달려들었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이를 통해 얻은 이익과 다음번에는 또 어떤 모델로 더 소비자를 만족시킬 것인가 하는 설렘의 고민이 시작될 것이다.
반면 100% 완판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혹시 물량이 너무 적어서는 아닐까, 가격이 낮아서는 아닐까’라고 아쉬워할 수도 있다. 만약 본인이 의사결정권자라면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전략적(?)인 생각으로 다음 기획에는 물량을 늘리거나, 가격을 높이고자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준비하고 기획 회의를 할 가능성이 높다.
간혹 어떤 경영자는 100% 완판을 친 아이템을 기획한 사람에게 칭찬보다는 오히려 수요예측이 잘못돼 판매를 실기(失期)했다며 핀잔을 주는 경우도 있다(사실 이 경우라면 칭찬만 해주시길 권한다).
이제는 다르게 생각해야 할 ‘완판’의 의미
우선 생산과 소비, 공급과 수요의 관점으로 시장을 조금 더 거시적으로 살펴보자. 4차 산업혁명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듯하지만, 아직 우리 대부분의 시장 시스템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 가격을 형성하고, 더 많이 만들면 더 많이 버는 ‘대량 생산’을 기반으로 한다.
산업혁명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대량생산 시스템은 시장의 수요보다 더 많이 생산하는 과잉생산으로 이어지게 됐고, 이는 수요보다 많이 만들어진 상품들을 창고에 재고로 쌓이게 했다.
감당하지 못하는 재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공급을 줄이고, 기존 재고를 소진하는데 노력하던 제조업체들은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기존 수요를 재창출시키기 위해 역발상으로 접근한 것이다. 생산을 줄이는 것보다 수요를 늘리는 것이 더 돈이 된다는 것을 이미 체득한 까닭이다.
기업은 소득과 생활 수준이 높아진 소비자들에게 이미 TV, 자동차, 의류를 가지고 있어도 트렌드에 맞지 않아서, 혹은 사용하는 데 불편해서, 고장이 잘 나서 등으로 새 상품을 구매하는 니즈를 만드는 ‘광고’나 ‘계획적 구식화’를 통해 소비를 촉진하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
혹시 당신이 이미 옷장에 옷이 충분히 많아도 오늘 아침 입을 게 없다고 느꼈다면 바로 이런 계획적 구식화에 길들여진 것이다. 이렇게 소비주의(Consumerism)는 ‘고객이 왕이다’ ‘고객은 항상 옳다’란 말로 시장에 대량의 재화나 서비스의 소비를 부추기며 소비 지향적인 사고를 갖게 했다.
완판을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대량생산, 소비주의를 논하는 이유는 2000년대 들어 MZ세대들이 더 이상 대량소비를 촉진하는 매스(Mass) 마케팅에 반응하지 않게 됐고, 오히려 완판되는 브랜드, 즉 사고 싶어도 더 이상 살 수 없는 제품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희소성과 높은 가격의 럭셔리 브랜드의 인기는 이러한 소비심리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베일에 싸여있던 명품 업체들의 연간 매출이 외부 감사법 개정으로 인해 4월 15일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 공개됐는데 에루샤(에르메스 4,190억 원, 루이비통 9,296억 원, 샤넬 1조467억 원)의 작년 총 매출은 약 2조4천억 원으로, 영업이익률은 약 15~31%까지 경이로운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희소성 때문에 성장하고 있는 군을 럭셔리 브랜드 시장에 한하여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요즘 핫하다는 상품들을 보면 대부분 완판되거나 소비자들이 매장 앞에 긴 줄을 선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아이폰이 출시될 때, 스타벅스에서 새로운 굿즈에디션들이 나올 때 이슈되는 까닭은 수요가 공급을 넘어 완판 되거나, 빠르게 사기 위해서 사람들이 줄을 서기 때문이다. 이러한 완판 문화를 단순히 마케팅 사례를 넘어 비즈니스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스니커즈’이다.
<photo 에어조던 블로그>
대량 소비의 균열은 스니커즈 시장부터
스니커즈 시장의 최강자는 누구일까? 아마 나이키 에어조던(Nike Air Jordan)을 꼽는데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NBA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을 위한 그리고 그가 보증하는 신발 및 의류 브랜드로, 과거에는 나이키의 브랜드였지만 현재는 나이키 산하의 독립브랜드로 운용되고 있다.
나이키 에어조던은 스포츠 브랜드를 넘어 스니커즈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문화 아이콘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마이클 조던의 선수 시절인 84년에 첫 번째 라인이 출시된 이후 은퇴한 2000년대 초까지 나온 에어조던 시리즈(1~14)는 스니커즈 시장에서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 은퇴 이후 에어조던 브랜드 전략을 크게 고민했을 것이다. 유추해보면 첫 번째 전략은 ‘Next 조던 찾기’였을 것이다. 이를 위해 빈스카터, 코비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라인 등 당대 최고의 NBA 스타들을 활용한 제품을 출시했지만 조던 신드롬을 따라가진 못했다.
두 번째 전략은 지속적인 에어조던 시리즈 출시였다. 현재까지도 에어 조던 35까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은퇴한 조던은 더 이상 새로운 신발을 신고 경기에 나올 수 없고 ‘마이클 조던’ 없는 새로운 ‘에어조던’은 더 이상 소비자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아울러 나이키는 이전의 시리즈보다 더 고급스럽고, 차별적으로, 혁신적으로 보여주고자 시장 니즈와는 동떨어지는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을 만들었고 높은 브랜드 가치를 보증하고자 알루미늄 박스 패키지 등 고급 패키지와 함께 30% 이상의 높은 가격으로 출시했다. 나이키는 에어조던에 무언가를 계속 더하려고 했다.
아울러 경쟁사들의 스트리트 패션, 힙합 아티스트와의 협업 라인들의 인기로 인해 조던 브랜드 가치는 떨어지게 됐다. 그러던 중 나이키는 새로운 현상을 발견했는데, 바로 이베이 등 중고 거래 마켓에서 과거 출시된 에어조던이 웃돈까지 붙여져 고가에 거래되는 리셀(Resell) 현상이다.
정리해보면 당시 마이크 조던의 은퇴 후 넥스트 조던 찾기는 실패했고, 새로운 버전의 조던은 팔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미 판매가 완료된 기존 에어조던 버전을 고객들은 지속해서 출시 요청하고 있으며 중고 거래까지 하고 있다.
일반적이라면 에어조던의 라이프사이클이 마지막에 달했다고 결정하고 기존 버전들을 대량으로 재생산해서 판매하자고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이키는 MZ를 정확하게 이해했고, 이들의 니즈에 맞는 전략적 선택을 하게 된다. 에어조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무언가를 더하기보다는 빼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리셀 시장의 핵심은 버리는 것 선택
흔히 좋은 전략이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살을 내어주고 뼈를 자르는 육참골단(肉斬骨端)의 전략이다. 나이키는 조던의 재활성화를 기획하는데 무엇을 더 하는 것이 아닌 빼는 것을 선택했다.
나이키는 별다른 프로모션 없이 제품의 적은 수량, 가격의 고정, 유통 경로를 한정적으로 했고 일부러 ‘완판’되게 만들었다. 그들의 전략을 4P 관점으로 정리하면 <표>과 같다.
우리는 ‘계획적 진부화’가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사실 제품을 동일하게 출시하는 것은 매우 불안하게 느낀다. 나이키는 캐리 오버(Carry Over)나 마찬가지인 제품을 조던이라는 브랜드 가치와 스토리에 입혔고, 이를 계획적으로 물량을 적게 만들면서 시장에서 수요를 초과하도록 만들었다.
제한된 상품의 수량 대비 초과된 수요는 MZ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과거 추억이 있는 조던 신발이 OG(Original)로 재출시가 되며, 출시 가격은 물가 상승률 정도로 합리적으로만 상승했다. 다만 물량이 적어서 제한된 매장에서만 일찍 가야만 구할 수 있는 유니크한 신발로 리포지셔닝한 것이다.
제품 기획과 물량, 출시 일정 및 유통 선택을 제외하고는 모두 2차적으로는 고객에게 맡기는 선택을 했으나, 이는 리셀을 통해 소비자들이 서로 자사 제품을 사고 판매하는 형식의 시장이 활성화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MZ입장에서는 든든한 중고 리셀 마켓이 있으니, 몇십만 원 정도의 용돈 차익을 남길 수 있는 똘똘한 브랜드 스니커즈로서 소비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이렇게 에어조던은 별도의 프로모션 없이 출시 소식과 고객들의 입소문만으로 MZ의 디지털 내 밈을 형성했다.
경제학의 수요공급 곡선에서 종속변수인 X축은 공급량과 수요량과 같은 수량, 독립변수인 Y축은 가격이다. 수요 공급 법칙에 의해서 수요가 일정한데 공급을 줄인다면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공급업체가 가격을 올리지 않는다면 당연히 리셀 가격은 오른다.
혹시 이 경우에 대해 글로벌 브랜드 나이키이니까, 에어조던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만큼의 스토리와 열광적인 팬덤이 있는 사례는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략과 과감한 선택은 우리가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제 힙한 브랜드로 포지셔닝되고 싶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완판 시 리오더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사실은 더욱 더 비즈니스를 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느껴지게 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지금의 MZ세대는 옷이 없어서, 신발이 없어서 사는 세대가 아니다. 그들의 소비 욕구를 맞추기 위해서는 그들 세계에서 인정받는 제품이 돼야 한다. 그들에게 사랑받고 싶다면? 샀을 때보다 다시 팔았을 때 ‘돈’이 되는 제품을 만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