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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아 Oct 06. 2023

나만의 관점을 만드는 법

'김상욱 물리학자' 이야기

1. '인생은 그 자체로 잡학'입니다.


물리학자인 제가 왜 잡학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요? 연구실을 나가는 순간 물리학만으로 풀 수 없는 문제가 많더라고요. 아이와 다툴 때는 심리학이 필요하고, 집에 고장 난 가전도 고칠 줄 알아야 합니다. 길 가다 생기는 문제, 학교나 회사에서 생기는 문제, 법적 문제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원래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존재입니다. '전문성'시대에 살면서 이 사실을 잃어버렸을 뿐이죠. 전문지식을 좇다가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지혜를 잃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흔히 지금을 '잡학의 시대'라고 하지만, 잡학은 트렌드가 아닙니다. 우리가 원래 하던 것입니다. 잡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이자, 제가 잡학을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잡학'이란 무엇일까요? 나의 전문분야 밖으로 나가는 겁니다. '선을 넘는'것이죠.



2. 명확한 경계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선'이 뭘까요? 그걸 넘는 건 왜 위험할까요? 우선 이런 질문을 해볼게요


나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어디까지가 '나'일까?

지구는 어디까지일까? 공기가 있는 곳일까? 공기는 어디까지일까?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죠. 연속적이에요. 질문을 답해보자면 '명확한 경계는 없다'입니다. 인간이 임의로 선을 그었을 뿐, 자연은 언제나 연속적이거든요. 그러나 우리 인간은 국경과 같은 선을 긋고, 그걸 넘는 사람을 위험한 인물로 간주합니다.



3. 실수를 기록하는 것, 과학자들의 실수하는 방법입니다.


선을 넘으면 실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인 분야가 아니니까요. 그러나 실수하지 않고 새로운 걸 배울 방법은 없습니다. 관건은 실수를 '어떻게'할것인가죠. '좋은 실수'를 해야 합니다. 실수를 의미 있게 하려면 그 실수를 숨기지 않아야 합니다. 부끄럽기 때문에 누구든 실수하면 감추고 싶어 해요. 그러나 실수를 숨기는 순간 누군가, 심지어 미래의 내가 이걸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집니다.


실수를 모두 기록하고, 드러내는 것은 과학자들이 '실수하는'방법입니다. 저희는 1년 365일 실패해요. 그러다 한두 번 성공한 걸로 논문을 씁니다. 어제의 실패를 기록해 놔야 오늘 똑같은 실패를 겪지 않아요. 



4. 질문을 의심할 때, 선을 넘습니다.


우리는 언제 선을 넘기로 결심할까요? 저는 '질문을 의심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 질문이 의도하는 바가 뭔지, 질문의 문장이 제대로 쓰였는지, 답이 있는 질문인지, 질문자가 알고 한 질문인지 생각하는 거예요. 질문 앞에 멈춰서는 겁니다. 답변부터 하는 게 아니라, 일단 질문의 근원으로 들어가 보는 겁니다.


최근 학생들에게 에세이 과제를 냈는데, 문제를 어떻게 내야 챗GPT로 과제하는 걸 막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문득, 제가 해야 할 질문은 이게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챗GPT를 피해 문제를 내는 게 핵심이 아니었던 겁니다. 질문을 더 깊은 레벨로 끌어내려봤어요.


나는 왜 과제를 내는가?

과제의 목표는 무엇인가?

복습의 방법이 왜 에세이인가?

과제하지 않고 복습하는 방법은 없는가?


질문을 깊게 하니 더 나은 답이 나오더라고요. 질문을 받았다고 바로 답할게 아니라, 깊게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5. 나만의 관점, 혁신은 결국 노가다를 통해서 생깁니다.


강연에서 자주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미래에 어떤 변화가 올까요?'라는 질문인데 정말 미치겠어요. 제가 어찌 알겠어요. 모든 변화의 추동이 되는 과학기술에서 미래 예측은 정말 힘들거든요. 그때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가가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전략은 변하지 않는 것에 토대를 둬야 한다. 사람들은 내게 5년 후, 10년 후 무엇이 변할지 묻지만, 무엇이 변하지 않을 건지는 묻지 않는다."

이거다 싶었습니다. 질문을 뒤집은 거죠. 변화의 시대,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게 하는 질문이 됐습니다. 이렇게 질문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그게 '노가다'를 끝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가능성에 대한 탐지를 완벽하게 했는데도 답이 없을 때요. 나는 정말 최선을 다는 자기 확신과 그때 선밖으로 나갈 용기가 생깁니다.


제가 만난 수많은 천재들은 예외 없이 노가다를 즐겁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노가다를 진심으로 열심히 하고, 모든 가능성에 대한 탐색을 끝낸 사람이요. 노가다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기에 없다는 확신을 갖고, 그 과정에서 나만의 관점을 만들고, 이를 통해 선을 넘는 것. 그리고 내 분야의 선을 넘고 들어와 단서를 주는 사람을 반기는 것.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거예요. 우리의 삶, 이 우주는 잡학 그 자체이니까요.





아티클 원문 : https://www.folin.co/article/5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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