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경험 관리의 우선순위 : 3. 환자의 만족
병원 경영자라면 인정하기 싫겠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병원 경영자는 병원을 우선시하지만, 직원은 철저히 자기 개인이 우선이다. 직원은 병원의 장기적인 미래보다는 자기 개인의 앞날을 고민한다. 스스로에 대한 노력과 투자도 그래서 병원보다는 자기 개인을 위해서 한다.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존재해야 할 헌신적인 사랑과 용서라는 개념도 직장에서는 있을 수 없고, 오히려 있으면 어색하다. 경영자와 직원은 경제적인 논리, 즉, '월급'이라는 틀에 의해 계약된 전략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책 <스마트한 병원경영 성공 병원의 비밀 노트> '직원을 가족처럼 대하지 말라' 본문 중-
이번 글은 E 치과병원에서 근무할 때의 이야기다. 이곳은 전체 직원 40명이 넘는 곳이었다. 처음 이곳에서 느낀 점은, '대단하다'였다. 모든 직원들이 오너십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고 있었다. 모두 업무 스킬을 늘리기 위하여 야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업무에 불평을 하지 않고 기꺼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공부하고 일을 한다고?' '이게 요즘 가능하다고?'를 수십 번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란 것은, 병원으로 매일 책 한 박스씩 택배가 도착했다. 대표원장 앞으로 도착한 거였다. 지금껏 나름 많은 치과의사들을 만났지만 이 정도로 전공 외 책을 많이 읽는 대표원장은 처음이었다.
E 치과의 가장 큰 강점은 대표원장의 직접적인 코칭과 참여였다. 보통은 조직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리더가 가장 두려워하며 지양한다. 특히나 의료계의 특성상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유지를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대표원장이 주도적으로 혁신을 하고 변화했다. 때문에 이곳은 디지털 덴티스트리에서도 가장 최전방에 있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가질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불편함을 고민했고 디지털 혁신으로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감성적인 마인드와 혁신적인 기술의 결합으로 환자들에게도 입소문이 자자했다.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은 찾아와서 진료를 받았으며 세계 치과의사들은 이곳에서 디지털 덴티스트리를 전수받았다. 이런 부분에 있어 팀원들에게 각 포지셔닝에서 무엇을,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며 대표원장은 선두에서 혁신적인 팀워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부합하여 성장할 수 있도록 A to Z까지 코칭을 했다.
더불어 회의 문화도 놀라웠다. 보고 역시 정확한 수치로서 이야기를 했다. 회의 시 발언 역시 능동적으로 이뤄졌다. 모든 시스템은 마치 병원이라기보다는 기업이 운영되는 느낌이었다. 각 부서별 회의가 요일마다 진행되는데 중간관리자로 입사를 했기에 전반적 흐름을 알기 위해서 난 매일 회의에 참석했다. 마케팅, 캐시플로우(cash-flow) 등 그간 병원회의에서 듣지 못했던 내용들이라 처음에는 흥미로웠다. 대표원장은 일반적인 개원의보다 경영에 대해서도 박식한 치과의사였다. 때문에 실무자들의 업무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한 번들 었던 숫자를 기억하는 능력도 놀라웠다. 초반에는 대표원장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감동까지 받았다. 이렇게까지 병원 경영을 하다니 말이다.
때문에 이곳은 아주 가파른 성장 속도를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가파른 성장곡선만큼이나 내부에서는 잡음이 많았다. 물론 모든 조직에서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곳은 특히, 경력자들의 퇴사문제가 심각했다. 심지어 관련된 외주업체에서는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1년이 되기 전 퇴사를 하게 하는 거냐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경력자들의 이탈률이 굉장히 높았다. 반대로 1년 차 때부터 근속한 직원들은 많았다. 대표원장의 A to Z 코칭은 아직 자신의 강점을 잘 모르는 사회 초년생은 E병원의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런 방식이 맞는 직원들은 더없이 성장하기 좋은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경력자는 이미 자신의 강점과 단점을 알고 있다. 그리고 업무적으로 그려내고 싶은 그림도 있을 수 있다. 이곳은 대표원장의 그림만을 그려야 했다. 심지어 나의 건강, 기분조차 대표원장의 컨트롤 하에 있어야 했다. 회의 자료를 만들기 위한 야근을 자주 했다. 치과라는 특성상 업무시간에는 당연히 환자를 봐야 하는 업무가 주 업무이기 때문에 회의 준비는 업무 외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틀린 숫자를 말하는 것에 아주 예민했던 대표원장이었기에 압박감에 난 출근시간보다 1시간 전 일찍 출근하여 회의를 준비했다. 상담업무와 데스크 업무를 보면서 거기다 페이퍼 워크까지 늘어나다 보니 내 몸은 견디지 못했다. 결국 병가를 써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
보통 보고 체계는 업무를 총괄하는 매니저에게 보고를 하고 매니저가 대표원장에게 보고를 한다. 하지만 아픈 직원은 대표원장이 걱정을 한다는 이유로 대표원장에게 직접적인 보고를 한번 더 해야 했다. 하지 않으면 내가 걱정을 하는데 왜 연락을 하지 않냐는 핀잔을 듣게 된다. 그러니 난 아픈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건강은 점점 더 안 좋아져 갔고 퇴사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을 때였다. 힘들어한다는 나의 소식을 알게 된 대표원장은 나를 불러 위로를 해주었다. 감사했다. 그런데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대표원장과 다시 면담을 하게 되면서 난 놀라운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대표원장인 당신이 직접 신경을 써주고 위로를 해줬으니 당연히 힘을 내서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이어서 계속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당신은 어떻겠냐는 질문에 난 말문이 막혔다. 이건 마치 난 진심을 담아 사과를 했으니 당연히 받아줘야지, 네가 뭔데 받지 않냐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지인과 통화하다 난 퇴사를 결심하게 됐다.
"이곳에는 왜 10년 동안 함께 한 직원이 없는 걸까요."
"그러면 선생님은 10년 있을 수 있어요?"
"아니요."
"아마 그 직원들도 그와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음.. 그러면 제가 해야 하는 걸까요? 제가 리더를 돕는 리더가 되기로 했는데.."
"선생님, 지금 행복하세요?"
그 질문을 받은 난,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끝없는 달리기를 하는 경주마가 지금의 내 모습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곳으로 이직한 뒤 난 몸이 제일 많이 아팠다. 거의 매일 이어지는 야근, 숫자를 틀리면 어김없이 고성이 오가는 회의, 숫자를 틀리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감, 달성해야 하는 KPI 등 끝없는 성장을 해야 하는 압박 속에서 매일을 보냈다. 그 결과 부종과 함께 난 몸무게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췌장 수치도 올라갔다. 스트레스로 피부 알레르기 반응이 심해졌고 화장을 할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았으니 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파트너 등록법'은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삶의 동반자로 등록하자는 법안이다. 최근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한집안에 여럿이 하우스메이트로서 산 사람들, 동거를 오래 한 커플, 심지어 동성커플 등에 대한 새로운 가족관을 만들고, 그럼으로써 이들에게도 '가족'에게 주는 각종 혜택을 주자는 내용이다. 회사 같은 조직에 이런 개념을 적용하면 어떨까? 과하지 않은 규제하에 허용되는 자율과 개인주의, 그리고 필요함과 사랑이 섞인, 뭔가를 함께 이루고, 필요한 것도 함께 나누는 조직. (중략)
파트너인 직원들은 고객 만족을 위한 엔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가족이다! 조금만 참고 일하면 여러분들도 좋은 날을 누릴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직원들의 행복을 유보시키거나 박탈한다는 것은 고객 만족의 엔진을 꺼뜨리는 짓인 셈이다. 엔진이 꺼진 상태에서 불경기를 극복하거나 위기를 넘기는 것이 가능할까?
-책 <스마트한 병원경영 성공 병원의 비밀 노트> '직원의 만족은 옵션이 아니다' 본문 중-
수많은 경영지침서에 따른 좋은 마케팅, 환자를 생각하는 경영, 성장을 계속할 수 있는 여력 모든 것이 좋았지만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있던 곳이었다. 디지털 혁신의 선두주자 E 치과, 환자 만족을 위해 기술적 혁신은 하고 있지만 과연 진정한 환자 만족을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